감각이 살아있는 상태에 대하여
청춘예찬(青春禮讚)~
- 감각이 살아있는 상태에 대하여 -
청춘은 나이의 이름이 아니다. 그것은 한 사람이 세상과 어떻게 닿아 있는가를 보여주는 상태다. 청춘은 먼저 눈에 들어온다. 화려해서가 아니라 몸과 마음이 어긋나지 않는다. 일하는 동작에 과장이 없고, 차림은 제자리에 있으며, 표정에 불필요한 방어가 없다. 순수하다. 꾸미지 않아도 자기 역할 안에 정확히 서 있는 모습은 보는 쪽을 편안하게 만든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귀에 남는다. 청춘의 말은 완성도가 아니라 방향이 좋다. 서툴러도 빙빙 돌지 않고, 자기 말에 아직 책임이 붙어 있다. 상대를 이기려 하지 않고 닿으려 한다는 감각이 있다. 냄새와 기척은 더 솔직하다. 청춘은 특별한 관리보다 방치하지 않겠다는 태도로 구별된다. 생활의 흔적은 있으되 타인을 밀어내지 않는다. 공간을 함께 쓰고 있다는 감각이 몸에 남아 있다. 이렇게 감각은 생각보다 먼저 청춘을 알아본다. 그리고 이 감각은 자연스럽게 마음의 상태로 이어진다. 청춘에는 순수가 있다. 세상을 몰라서가 아니라 모든 관계를 의심과 계산으로 시작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친절은 전략이 아니라 반응이고, 사람을 대할 때 손익계산은 한 박자 늦다. 그리고 염치. 청춘은 자기 몫을 안다. 더 가질 수 있는지 따지기 전에 이미 한 발 물러설 줄 안다. 그 염치는 비굴하지 않고 단정하다. 메를로 퐁티는 인간은 사고하는 존재 이전에 느끼고 닿아있는 몸으로 보았다. 그 말대로라면 청춘이란 생각의 문제가 아니라 감각이 아직 세계와 직접 연결된 상태다. 그래서 청춘은 예쁘기보다 편안하다. 대단해 보이기보다 거부감이 없다. 우리가 청춘을 알아보는 이유는 그들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아직 삶이 잘 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늙음은 나이가 아니다. 늙음은 고집이 되고, 편견이 되고, 관리를 포기한 태도다. 자기 방식만 옳다고 믿고, 타인의 감각을 고려하지 않으며, 불편함을 남기고도 그것을 문제로 여기지 않는 상태. 반대로 나이가 들어도 감각을 열어두고, 말을 다듬고, 몸과 태도를 관리하고, 염치를 놓지 않는 사람은 여전히 청춘으로 예찬된다. 시각적인 젊음과 상관없이 자기 자신을 돌볼 수 있는 태도. 이 태도가 살아 있는 한 청춘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가 예찬하는 청춘은 미래의 가능성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감각이 열려있고, 마음이 계산보다 먼저 움직이며, 순수와 염치가 아직 삶의 앞자리에 있는 상태다. 청춘은 주장할 수 없다. 젊다고 말한다고 생기지 않는다. 그저 보이고 들리고 느껴질 뿐이다. 그리고 그 상태는 나이와 무관하게 지켜낼 수도, 잃어버릴 수도 있다. 그래서 오늘 청춘을 예찬한다는 것은 젊은 사람을 추켜세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상태로 살아가고 싶은지를 다시 정리하는 일이다. 이건 찬사가 아니라 정의(定義)다.
2026 3月初, 봄은 청춘이다.
獨樂齋에서 幽人이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