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쉽게 우리의 기준과 권리를 양보하는가

by diogenes


사람은 약해서 기준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너무 잘 적응하기 때문에,

너무 잘 관계를 유지하려 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내려놓는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안다.

기준을 내세우는 순간,

공기가 바뀐다는 것을.

말 한마디로 분위기가 미묘해지고,

상대의 표정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선택한다.

조금 불편해도 참는 쪽을.


이 선택은 틀리지 않다.

문제는 그것이 반복될 때이다.


1. 관계를 우선하는 사회, 기준을 뒤로 미루는 개인


우리 사회는 유독 관계를 중시한다.

조화, 눈치, 분위기.

이 세 가지는 능력처럼 여겨지고,

실제로 많은 상황에서 유효하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비용이 있다.

- 하고 싶은 말을 삼키고

- 불편한 상황을 웃으며 넘기고

- 원하지 않은 선택을 받아들인다.


이 과정이 쌓이면, 어느 순간 묻게 된다.

“ 나는 왜 항상 맞추고 있는가”


Jean-Paul Sartre는 말했다.

“ 타인은 지옥이다”


이 말은 타인을 부정하라는 뜻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 속에서 스스로를 잃어버릴 때,

그 관계가 고통이 된다는 뜻이다.


관계를 지키기 위해 기준을 포기하는 순간,

관계는 유지되지만 ‘나’는 희미해진다.


2. 우리는 왜 쉽게 양보하는가.


이유는 단순하다.


첫째, 지금의 불편을 피하고 싶어서다.

기준을 말하는 순간 생기는

긴장, 설명, 상대의 반응.

이 모든 것을 감당하기보다

그냥 넘어가는 것이 훨씬 쉽다.


둘째,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다.


Friedrich Nietzsche는 이런 태도를 비판하며 말했다.

“ 도덕은 약자의 전략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때때로 ‘좋음’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기준을 포기한다.


셋째,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서다.


어디까지가 나의 선인지 모르면,

상황에 따라 흔들릴 수밖에 없다.


결국 우리는 선택한다.

나중의 손해보다, 지금의 편안함을.


3. 기준을 지킨다는 것의 의미.


기준을 지킨다는 것은 고집을 부리거나, 타인을 불편하게 만드는 일이 아니다.


그건 단순히 이 말과 같다.

“ 나는 나를 이렇게 대한다. “


Aristoteles는 말했다.

“ 우리는 반복하는 행동이 곧 우리 자신이다.”


기준은 선이 아니라 습관이다.

한 번의 선택이 아니라,

반복되는 태도다.


중요한 건 방식이다.


감정을 실어 말하는 기준은 갈등을 만든다.

하지만 감정을 뺀 기준은 질서를 만든다.


- 불편하면 말한다.

- 하지만 표정은 평온하다.

- 요구는 분명하지만, 태도는 부드럽다.


기준은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운영하는 것이다.


4. 기준을 지키는 삶의 자세.


모든 것을 기준으로 만들 필요는 없다.

그렇게 살면 피곤해진다.


중요한 건 선별이다.


-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몇 가지

- 쉽게 양보하면 안 되는 순간들


그것만큼은 지키는 것이다.


Michel Foucault는 말했다.

“ 자기 자신을 돌보는 것이 삶의 기술이다. “


기준을 지킨다는 것은 타인을 이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관리하는 기술이다.


5. 양보와 포기의 차이


양보는 선택이다.

포기는 습관이다.


Erich Fromm은 말했다.

“ 자유는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다 “


선택으로 하는 양보는 관계를 부드럽게

만든다. 하지만 습관이 된 양보는 자신을 소모시킨다.


그래서 우리는 구분해야 한다.


지금 내가 하는 것이

관계를 위한 선택인지,

아니면 그냥 편해서 넘기는 포기인지.


우리는 매일 작은 선택을 한다.

자리하나, 말 한마디, 태도하나.


그 사소한 순간에서

기준은 만들어지거나, 사라진다.


결국 삶은 삶은 거창한 결단이 아니라

이 작은 기준들의 누적으로 완성된다.


싫으면 No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그러면서도 감정을 섞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이 결국

가장 편안하게, 그리고 가장

단단하게 살아간다.


기준을 포기해야 유지되는 관계라면,

그건 이미 나를 잃은 선택이다.


2026년 4월 초순, 춘우강림(春雨降臨)

獨樂齋에서 幽人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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