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자의 위치에 대하여

최소의 존재와 사유의 형식

by diogenes

철학은 언제나 삶보다 늦게 도착한다. 개념은 세계를 설명하지만, 세계는 늘 개념보다 먼저 인간을 통과한다. 그래서 어떤 사유는 배움에서 시작되고, 어떤 사유는 경험의 침전에서 시작된다. 후자의 경우 철학은 학문이라기보다 이미 겪어버린 삶을 정리하는 명명(命名)의 기술에 가깝다. 가난, 생존, 돈의 질서, 인간의 이기심과 배신, 사랑의 불완전함, 인간의 수단화, 욕망의 거친 배설 등 이것들은 이론 이전에 몸의 기억으로 축적된다. 이 지점을 통과한 사유는 인간을 이상화하지도, 정당화하지도 않는다. 동시대의 많은 철학은 제도와 직업의 보호 속에서 형성된다. 그곳에서는 사유는 정밀해지지만, 동시에 위험으로부터 멀어진다. 직함, 명성, 권위, 제도는 사유를 가능케 하는 조건이면서도 끝까지 벗기 어려운 보호막이 된다. 반면 제도 밖의 사유는 설명보다는 직면(直面)에 가깝다. 그것은 개념을 앞세우기보다 삶의 무게가 허락하는 만큼만 말한다. 그래서 공격적이지는 않지만 회피할 수도 없다. 이러한 사유는 자신을 드러내는 데 인색하다. 대중적 노출이나 영향력을 목적으로 삼지 않는다. 글은 성과가 아니라 놀이이며, 기록이고 감당가능한 한계에서만 공유된다. 이때 사유의 목적은 세계를 바꾸는 데 있지 않다. 다만 자신이 통과해 온 삶의 궤적을 하나의 형식으로 남기는 데 있다. 이것은 과시가 아니라 최소한의 존재확인이다. 과잉현존의 시대엔 모든 것이 드러나야 존재가 되는 시대에 침묵과 절제는 소극성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 사유의 크기를 정확히 아는 태도이다. 존재에는 각자 어울리는 크기가 있다. 그 크기를 넘지 않는 사유는 겸손해서가 아니라 정확해서 오래 남는다. 철학은 많이 말하는 데 있지 않다. 끝내 말할 수밖에 없는 것만을 남기는 데 있다. 현대 유명 철학자들의 사유는 내가 살아온 시대를 해석하는 데 충분히 유효한 언어를 제공한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사유를 대체하거나 보충해야 할 결핍의 자리는 아니다. 나는 다만 다른 경로로 같은 시대를 통과했을 뿐이다.


2026 1월 丙午正初~

獨樂齋에서 幽人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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