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정직함에 대하여

스스로 선택한 삶의 질서

by diogenes

존재의 정직함에 대하여~

우리는 오랫동안 이성, 건강, 도덕, 규율이라는 이름으로 자기 자신을 관리하는 법을 배워왔다. 그것은 처음엔 삶을 지탱하는 지침처럼 보였고, 곧 책임이 되었으며, 마침내는 자기 자신을 심문하는 내면의 재판으로 변해갔다. 스토아 철학은 감정을 다스리지 못한 인간의 약함을 경계했고, 칸트의 윤리는 옳음 앞에서 욕망을 의심하라고 요구했다. 그 사유들은 위대했지만, 현대에 이르러 종종 삶을 견고하게 만드는 철학이 아니라 스스로를 끝없이 자책하게 만드는 강박의 언어로 오해되었다. 그 결과 우리는 병들면 지난 일상을 후회했고, 흐트러지면 실패한 인간이 되었으며, 허락된 즐거움조차 변명해야 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그 오랜 자기 재판을 끝낸다. 수십 년 동안 내면에 자리잡은 이성의 판사, 도덕의 검사, 규율의 교관을 조용히 해임한다. 그리고 마침내 “이래야 한다”가 아니라 “나는 이렇게 산다”라는 문장을 자기 삶의 중심에 놓는다. 그가 얻은 것은 방종이 아니다. 완벽함은 아닐지 몰라도 자연스러움이고 그 다움이다. 다만 그것은 두려움에서 비롯된 규칙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질서다. 처벌도, 죄책도, 채점표도 없이 자기 기준으로 구성된 삶. 20세기 독일 철학자 아도르노가 지적했던 문제는 개인의 쾌락이나 나태가 아니라 삶 전체를 하나의 ‘옳은 형식’으로 통합하려는 잘못된 전체성이었다. 행복을 처방하고, 건강을 도덕화하고, 이성을 통치의 도구로 만드는 사회. 인간은 기쁨과 슬픔을 오가고, 오감의 본능을 즐기고, 때론 긴장되고, 흐트러지면서 자연스럽게 살다 병들고 죽는 존재다. 이 흐름에 동참하는 것이 존재의 정직함이다. 그래서 결론은 단순하다. 나는 나 답게, 너는 너답게. 자유란 아무런 규칙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타율의 명령을 벗겨내고 자신의 삶의 규칙을 스스로 선택하는 능력이다. 모두가 자신이 만들고 선택한 자유를 온전히 향유할 수 있는 사회. 그 사회야말로 진정으로 건강한 사회다. 그리고 철학의 역할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삶들이 병존할 수 있도록 질문과 침묵의 공간을 남겨 두는 일이다.


2025 12월 Christmas Eve에

獨楽齋에서 幽人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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