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ee from vs free to~
- 돌을 놓는자,신의 그늘에 서다 -
이전 글 <존재의 중력과 해방>에서 개인이 짊어진 사회적 증명의 돌을 스스로 방기(放棄)하는 ‘실존적 결단‘에 대해 논한 바 있다. 그 글은 외부적 증명에서 내부적 충만으로 나아가는 ‘창조하는 자유(freedom to)’를 통해, 존재가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해방의 가능성을 탐색했다. 하지만 그 해방의 끝에서, 우리는 문득 또 다른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모든 것을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절대적 자유는 과연 완전한 평안을 주는가. 그 자유의 끝에서, 죽음이라는 유한성 앞에 선 우리는 어디에 기댈 수 있는가. 이 지점에서 우리는 ‘벗어나는 자유(freedom from)’라는, 거대한 유혹이자 구원의 가능성과 마주하게 된다. 이 글은 바로 그 두 번째 자유에 관한 탐구다. 모든 것을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무한한 자유의 무게는 때로 감당하기 힘든 형벌이 된다. 도스토옙스키의 대심문관이 갈파했듯, 나약한 인간에게 자유는 감당키 힘든 선물일 수 있다. “차라리 그 무거운 자유를 반납하고, 절대자에게 모든 것을 위탁함으로써 얻는 안정과 평화가 더 큰 행복이 아닌가?“ 이 질문은 날카로운 유혹으로 다가온다. 여기서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자유(freedom from)’의 길이 열린다. 그것은 사유와 고통의 짐을 내려놓고, 나의 존재와 삶의 모든 결과를 신의 섭리에 위탁하는 길이다. 이 길을 선택하는 순간, 선택의 고통과 책임의 부담은 눈 녹듯 사라진다. 나의 성공은 은총이 되고, 나의 고통은 의미 있는 시련이 된다. 나는 더 이상 불안에 떠는 주체가 아니라, 거대한 질서 안에서 보호받는 안전한 존재가 된다. 이것은 거친 파도 위에서 홀로 서핑을 즐기는 위태로운 자유가 아니라, 모든 풍파를 막아주는 잠수함 안에서 누리는 평온의 자유다. 질문과 사유를 포기하는 대가로 얻는 이 궁극의 평안이야말로, 어쩌면 또 다른 형태의 ‘절대자유‘ 일지 모른다. 결국 ‘돌을 놓는 자‘는 해방의 끝에서 또다시 선택의 갈림길에 선다. 하나는 고독과 책임을 끝까지 감수하며 스스로 스스로의 의미를 지켜나가는 ‘freedom to’의 길이며, 다른 하나는 질문을 내려놓고 절대자에 귀의함으로써 마음의 평안을 얻는 ‘freedom from’의 길이다. 어느 길이 더 우월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 그것은 각자의 영혼이 자신의 실존적 무게 앞에서 내리는 궁극의 선택이다. 중요한 것은, 해방 이후에도 인간은 선택을 멈출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그 갈림길 위에서 고뇌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에게 주어진 장엄한 형벌이자 위대한 특권이다.
2026 1월 中旬, 깊은 밤에~
獨楽齋에서 幽人이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