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의 연대

중력 없는 마주침에 대하여

by diogenes

폐허(廢墟)의 연대(連帶)

- 중력 없는 마주침에 대하여 -

이전 글 <free from vs free to>에서 나는 해방 이후의 고립과 절대적 자유가 주는 형벌 같은 무게에 대해 논했다. 이제 그 사유의 종착지에서 우리는 마지막 결단을 마주한다. 그것은 단순히 돌을 산아래로 굴려 버리는 1부의 ‘방기(放棄)를 넘어, 돌을 밀어 올려야 했던 산이라는 시스템 자체를, 그리고 그 산을 정복하려 했던 ‘나‘라는 주체적 욕망까지 통째로 무너뜨리는 ’ 붕괴’와 ‘해체‘ 의 현장이다. 기댈 언덕도, 숨어들 잠수함도 사라진 완전한 폐허, 그 황량한 대지 위에서 비로소 진정한 ‘관계‘가 시작된다. 내가 그토록 경계했던 ’또 다른 돌이 되는 관계‘ 란, 상태의 존재를 나의 선의나 욕망으로 채우려 할 때 발생한다. 그러나 주체성 마저 방기한 폐허 위에서의 관계는 다르다. 그것은 내가 옳다고 믿는 선(善)을 강요하는 해우(解憂)의 폭력을 멈추고, 타자가 스스로 길을 찾아가도록 조심스럽게 곁을 내주는 하이데더의 ’ 본래적 배려’의 실현이다. 이곳의 관계 서로를 구속하는 밧줄이나, 짐을 나누어 드는 부채감 대신, 각자가 허공에 뜬 투명한 존재임을 인지하는 ‘중력 없는 마주침‘ 만이 존재한다. 그것은 서로 소유하지 않으면서도 당신의 거기 있음을 인정하는 먼 지평선의 반짝임이며, 각자의 궤도를 존중하는 빛의 간섭과도 같다. 나를 증명하려는 강박도 방기하고, 타인이 나를 구원하려는 기대도 방기 할 때, 비로소 인간은 서로에게 아무것도 아님으로써 온전한 타자가 되는 장엄한 자유에 도달한다. ‘아무것도 아님(being nothing)’ 은 허무가 아니라 상대를 나의 세계로 편입시키려는 욕망을 방기한 상태를 말하며, 무엇이 됨(being something)이란 서로에게 의미의 밧줄이 됨을 말한다. 산이 부서진 자리, 아무것도 없는 폐허를 함께 응시하는 이 느슨하지만 필연적인 ’ 폐허의 연대‘야 말로 중력을 거부한 자들이 도달할 수 있는 실존의 평안이자, 절대자유의 경지일 것이다.


2026 1月 中旬,

獨樂齋에서 幽人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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