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에서 침묵까지
사물에 대하여~
우리는 어떤 사물을 본다. 그것은 처음부터 의미를 갖지 않는다. 다만 눈에 들어오고 몸이 먼저 반응한다. 이 반응은 선택이 아니라 이미 형성된 본능에 가깝다. 본능은 이유를 묻지 않는다. 작동할 뿐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 작동을 그대로 두지 못한다. 본능이 끝나는 자리에서 우리는 묻는다. 왜 이런 반응이 생기는가. 왜 이 사물은 다른 것 보다 먼저 감각을 흔드는가? 이 질문은 곧 기원(起原)에 대한 사유로 이어진다. 진화(進化)라는 개념은 이 지점에서 가장 강력한 설명을 제공하나 태초의 의도도, 목적도 없이, 필요와 반복, 실패와 축적 속에서 감각과 반응은 서서히 형성되었다. 상상을 초월한 시간 동안 무수히 반복된 선택(selection)이 오늘의 본능으로 각인되었다는 설명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설명이 충분해질수록 질문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방향을 바꾼다. 왜 우연의 축적은 이토록 정합(整合)한 형식을 갖게 되었는가. 왜 인간은 설명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끝내 의미를 묻게 되는가. 이 지점에서, 사유는 자연(自然)을 넘어선다. 초월(超越)이라는 개념이 떠오르고, 그 초월에 이름이 붙는다. 도(道)라고 불리기도 하고, 로고스(logos)라 불리기도 하며, 신(神)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 이름들은 대상을 가리키기보다는 ‘ 설명 이후에도 남아있는 자리’ 를 표시한다. 중요한 것은 그 이름을 믿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 자리를 끝내 외면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본능에서 출발한 반응이 기원과 생성과정을 거쳐 초월의 질문까지 밀려 올라오는 이 구조는 인간 사유의 고유한 형식이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사유는 다시 하나의 선택 앞에 선다. 그 빈자리를 말로 채울 것인가, 아니면 그대로 둘 것인가? 어떤 철학자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말은 포기가 아니라 한계에 대한 정직함이었다. 나는 본능을 끝까지 밀어 사유했고, 진화로 설명해 보았으며, 초월과 신의 자리에 다다랐지만 그 끝에서 어떤 결론도 세우지 않았다. 그 침묵 속에서 사물은 비로소 사물로서 온전해진다.
2026 1月 丙午正初, 嚴冬雪寒에
獨樂齋에서 幽人이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