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한계와 사랑의 형식
자식에 대하여~
- 관계의 한계와 사랑의 형식-
자식 농사가 인생의 결말을 좌우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자식의 성취가 곧 부모의 삶을 증명한다는 뜻이 아니라, 부모가 자식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했는가가 결국 자가 삶의 윤곽을 드러낸다는 의미에 가깝다. 자식은 태어나며 보호의 대상이 되지만, 성장과 함께 선택의 주체가 된다. 스스로 사물을 분별하고 판단하고 그 선택의 결과를 감당할 수 있는 존재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부모의 역할은 점차 축소되어야 한다. 이 축소는 무책임이 아니라 관계의 형식을 바꾸는 일이다. 부모 역시 한때는 자식이었다. 지금의 삶이 누군가의 지시나 요구로 완성된 것이 아니라, 수많은 시행착오와 실패를 통과하며 스스로 길을 찾은 결과다. 삶의 방향은 타인의 요구로 결정되지 않는다. 강요된 선택은 삶을 만들지 못하고 다만 타인의 의지를 대신 수행하는 역할만 남긴다. 그러한 삶은 독립적일 수 없다. 결정의 순간마다 부모의 그림자가 그리워지고, 선택은 승인과 허락을 기다리게 된다. 스스로 겪지 않는 삶은 스스로 향유할 수 없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과도한 간섭은 사실상 사랑이 아니라 욕망이다. 자식의 삶을 통해 자기 삶의 불안을 보상받으려는 시도이며 통제의 실패를 애정으로 포장한 것에 가깝다. 자식에 대한 최대의 사랑은 올바른 선택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도록 허락하는 데 있다. 그 선택이 최선일 수도 있고 차선이거나 더 낮은 선택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결과가 자신의 것일 때만 인간은 다시 시도할 수 있다. 성취에는 속도가 있다. 누군가는 빠르고 누군가는 더디다. 그러나 성인이 된 이후의 삶의 여정에서 부모가 대신할 수 있는 역할은 없다. 삶은 본질적으로 대리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사회는 부모가 영원히 살며 자식의 삶을 끝까지 관리할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이는 자연의 질서를 거스르는 태도이며 자식의 자유와 독립을 침해하는 오만이다. 관계에는 한계가 있다. 그 한계를 인식하지 못한 채 사랑은 얽힘이 되고 보호는 구속이 된다. 부모와 자식 또한 예외가 아니다. 각자의 삶은 각자의 것이다. 부모의 역할은 자식의 삶을 대신 사는 데 있지 않고, 자식이 자기 삶을 살 수 있도록 물러나는 데 있다.
2026. 1月中旬 따뜻한 겨울날~
獨樂齋에서 幽人이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