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의 공간을 독락재라 부르는가
독락원기를 품은 독락재
- 왜 나의 공간을 독락재라 부르는가 -
나는 내가 머무는 공간을 독락재(獨樂齋)라 부른다. 그리고 그 안에서 유인(幽人)이라는 이름으로 글을 쓰고 사유한다. 누군가는 ‘홀로(獨) 즐긴다(樂)’는 말에서 고립이나 고독을 읽을지도 모르겠으나, 나에게 이 이름은 세속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내면의 주권을 되찾겠다는 가장 적극적인 독립선언이다. 내가 독락을 삶의 근거로 삼게된 것은 송대(宋代) 대학자(大学者) 사마광(司馬光)선생의 ‘독락원기(獨樂園記)‘를 만나고 나서부터다. 선생은 스스로를 우수(迂叟), 즉 시대에 뒤떨어진 우직한 늙은이로 칭하면서 낙양(洛陽)의 정원에서 천하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지극한 즐거움을 누렸다. 그가 남긴 시를 통해 나의 독락재가 지향하는 바를 세상에 내 보인다.
<獨樂園記(독락원기)>
迂叟平日讀書, 上師聖人,下友群賢, 窺仁義之原, 探禮楽之緒. 自未始有形之前, 暨四達無窮之外, 事物之理,擧集目前, 可者學之, 未至未可, 何求於人, 何待於外哉? 志倦體疲, 則投竿取魚, 執衽采藥, 決渠灌花, 操斧剖竹, 濯熱盥水, 臨高縱目, 逍遙徜徉, 惟意所適, 明月時至, 清風自来, 行無所牽, 止無所抳, 耳目肺腸, 卷為己有, 踽踽焉, 洋洋焉, 不知天壤之間, 復有何樂, 可以代此也. 因合 而命之曰獨樂!
나 우수(迂叟)는 평소에 책을 읽으며, 위로는 여러 성인을 스승으로 삼고 아래로는 여러 현인을 벗으로 삼으며, 인과 의의 근원을 살피고 예와 악의 실마리를 탐구한다. 형체가 생기기 이전부터 사방에 끝없는 외부에 이르기까지 사물의 이치를 눈앞에 모아놓고 가능한 것을 공부하니, 가능한 것에 미치지 않는 것을 어찌 남에게 구하겠으며 어찌 밖에서 배우기를 기대하겠는가? 뜻이 권태로워지고 몸이 나른해지면, 물가에 낚싯대를 드리워 물고기를 잡기도 하고, 옷자락을 거머쥐고 약초를 캐기도 하며, 도랑을 치우고 꽃에 물도 주며, 도끼로 대나무를 쪼개기도 하며, 한 대야의 물로 더위를 씻고, 높은 데 올라 눈길 가는 대로 바라보기도 하며, 한가로이 이리저리 거닐며, 오직 마음 가는 대로 따라 할 뿐이다. 밝은 달은 때맞추어 떠오르고 맑은 바람이 절로 찾아오니 , 가도 잡는 것이 없고 멈추어도 막는 것이 없다. 눈 귀 폐 장도 모두 온전한 나의 소유라, 홀로 멋대로 걷고 내 마음은 항상 넓고도 넓어져, 하늘과 땅 사이 또한 어떤 즐거움이 이를 대신할 수 있겠는가? 이를 모두 합하여 ‘독락(獨樂)’이라 이름하노라!
세상이 말하는 즐거움(大樂)이 화려한 성취와 타인의 인정이라면, 내가 독락재에서 누리는 작은 즐거움(小樂)은 귀와 눈과 폐와 창자가 온전히 내 것이 되는 감각의 회복이다.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쓰는지 온전히 자각하는 시간. 그때 나는 진정한 독락재의 유인(幽人)이 된다. 이제 독락재의 창을 열어 내가 만난 성현의 목소리와 나의 사유의 편린의 기록을 보낸다. 이 글이 누군가에게 자신만의 독락을 찾는 실마리가 된다면 충분하다. 내가 우수선생을 만난 행운(幸運)처럼.
2026 1月中旬, 벌써 夕陽이 와 있음.
獨樂齋에서 幽人이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