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삶의 절반을 잃어 버렸나
행복이라는 감옥
- 우리는 왜 삶의 절반을 잃어 버렸나 -
기쁨•행복•평온한 일상, 우리는 이 것들을 우리 삶의 권리이자 마땅한 기본 값이라고 여긴다. 반면 불행•병•고통•상실과 같은 것들은 어떤가? 그것들은 마치 외부에서 침입한 이 물질처럼 내 삶의 이야기에 속하지 않는 불청객처럼 취급된다. 막아야 하고 피해야 하고, 닥쳐왔을 때 최대한 빨리 벗어나야 할 ‘문제상황’으로 규정된다. 하지만 우리가 우리 것이 아니라고 여긴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 것이 아닐 수 없다. 삶의 그림자는 내가 존재하는 한 반드시 함께 한다. 우리는 왜 이토록 필사적으로 삶의 절반을 부정하려 드는가. 이 명백한 착각의 뿌리는 어디에 있으며, 우리는 그 대가로 무엇을 잃고 있는가. 우리는 오랫동안 정상(正常, normal)의 기준을 긍정적인 것에만 두는 오랜 규칙 속에서 살아왔다. 이것은 생존하려는 우리의 본능(뇌, brain)이 설계하고, 의미를 찾으려는 우리의 마음(자아, ego)이 다듬었으며, 공동체 속의 우리의 관계(사회, society)가 확성시킨 거대하고 교묘한 합작품이다. 뇌는 ‘안전=정상’이라는 안정적인 공식 위에 자아(ego)는 ‘행복=정상’이라는 도덕적 서사를 덧씌웠다. 사회는 이 기준을 더욱 증폭시킨다. 미디어는 행복한 삶의 이미지를 표준으로 전시하고, 경제 시스템은 소비를 통해 행복에 이를 수 있다고 속삭이며, 문화는 ’행복하라‘는 말을 덕담처럼 건넨다. 이처럼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행복해야만 한다’라는 거대한 자기 세뇌 속에 살아간다. 우리는 ‘나의 행복’을 위해 주체적으로 노력한다고 믿지만 사실은 ’행복해야만 한다‘라는 사회적 룰의 노예가 되어 있다. 이것은 완전한 ‘주체적 자유의 상실‘이다. 진정한 자유란, 어떤 감정이 찾아 오든 그것을 나의 것으로 온전히 경험하고 수용하는 태도를 선택할 자유다. 결국 우리는 스스로 만들었다고 착각하는, 사회가 부여하는 룰에 갇혀, 삶의 모든 스펙트럼을 자유롭게 경험할 주체성을 잃어버린 것이다. 우리가 만든 이 ‘아름다운 감옥’에서 벗어날 길은, 삶에 대한 저항을 멈추고, 삶의 모든 것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삶과 온전히 같이 가는 마음을 내는 데 있다. 이것은 체념이나 포기가 아니라, 삶의 모든 경험을 스승으로 삼는 ‘적극적 수용’의 태도다. 삶의 부정적인 것들 조차 내 삶을 더 깊고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또 다른 챕터로 읽어낼 때, 비로소 우리는 새로운 세상을 마주하게 된다. 병(病)은 유한성을, 슬픔(悲)은 공감의 깊이를, 상실(喪失)은 존재의 소중함을 가르쳐 주는 역설적인 선물이 된다. 불행•병•아픔•상실 그 한가운데에도 또 다른 종류의 평정(平靜)이 존재한다. 그것은 고통이 없는 안락함이 아니라 저항을 멈추고, 현재에 집중하며, 나라는 집착에서 벗어날 때 찾아오는 더 깊고 본질적인 고요함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찾아야 할 자유는 불행 앞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는 권리다. 삶의 빛과 그림자를 모두 나의 것으로 끌어안고 묵묵히 걸어갈 때, 비로소 우리는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삶의 전체와 함께 진정한 평온에 이른다.
2026 1月, 눈 내릴 것 같은 오후
獨樂齋에서 幽人이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