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토피아 2>가 개봉하자마자 열풍을 일으키는 바람에, 궁금해진 나는 곧바로 영화관을 찾았다. <주토피아 1>에 이어 시즌 2도 지금의 형국을 잘 담아냈다는 소식을 들어 기대감이 커진 상태였다.
'주토피아'는 현실 세계를 많이 닮아 있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는 미국이나 유럽처럼 '인종 다양성'이라는 맥락이 부재한다. 특히 우리나라같은 획일 사회에서는 '다름'이라는 개념 자체의 무게가 조금 다르다. 그래서 사실 한국적인 관점에서는, 개성과 정체성이 눈에 띄게(obviously) 다른 주토피아의 세계관이 깊이있게 와닿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에서의 다름'보다 '애니메이션 속 다름'이 훨씬 직관적이니까. 누가 봐도 영화 속 동물들은 서로 '달라' 보인다.
하지만 재미있는 건, '동물'이라는 소재로 표현되었을 뿐이지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도 마찬가지라는 점. 성별, 나이, 직업, 외모, 취향... 끝도 없이 나열되는 이 수많은 기준들 아래, 우리는 생각보다 더 많고 다양한 라벨을 달고 살아간다. '진보', '고졸', '금수저'처럼 말이다. <주토피아>는 저마다의 정체성을 안고 살아가는 이 거대한 현대 사회를 애니메이션적 요소로 똑똑하게 그려낸다.
서울을 떠올리면 어떠한 이미지가 하나로 딱 떨어지는 느낌이 든다. 바쁘고, 빠르게 굴러가는 거리 위를 발디딜 틈 없이 꽉 채우는 사람들. 마치 이 모든 수식어가 모여 결국 궁극적인 '서울'을 말하는 것 같달까. 물론 종로와 홍대가 다르고, 또 성수와 여의도가 다른 것처럼 지역마다 분위기는 천차만별이다. 그럼에도 서울은 왠지 모르게 도시로서 일관된 느낌을 준다. 아마 우리가 런던, 파리, 도쿄와 같은 도시에 기대하는 정형화된 이미지가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일지 모른다.
하지만 영화 속 주토피아는 하나의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획일화되어 있지 않았다. 도시의 이곳저곳에 각기 다른 문화가 녹아들어 공존하는 사회. 이러한 주토피아의 모습은 우리로 하여금 미국의 뉴욕을 연상케 한다. 토끼, 여우, 고양이, 생쥐, 나무늘보, 얼룩말... 그야말로, 주토피아를 이루는 수많은 집단이 있고 그 다양성과 개성이 뭉개지지 않은 그 자체로 보존된다. 그 곳에 살아본 적은 없으나, 미국은 한국과 비교 불가능할 만큼 다문화 사회로서 인종, 언어, 문화적 측면에서 다양성을 지니고 있다. 뉴욕에서는 기본적으로 '다양함'이 전제된다. 즉, 그들은 서로가 일단 다른 걸 알고 살아간다. 우리나라에서처럼 모두가 '같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로는 뉴욕에서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동물들의 이상향, 주토피아조차도 완전무결할 순 없었던 걸까. 얼핏 개성 있는 가지각색의 동물들이 모여 평화롭게 사는 듯해 보이지만 이 도시 역시 그리 '유토피아'스럽지만은 않았다. 소동물인 토끼는 약하고 멍청하다거나, 여우는 교활한 사기꾼이라는 편견으로 뒤덮인 세상. 이처럼 <주토피아 1>에서도 나왔듯이, 결국 그 누구도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토끼는 토끼대로의 고충이 있고, 포식자라 편하게 살 것만 같은 여우도 주변의 소음에 괴로워한다. 우리는 줄곧 서로를 편견에 가두고, 결국 그게 편견인지조차 모른 채 무심하게 살아간다.
혐오는 쉽다. 혐오는 줄곧 '무지'에서 비롯된다. 다름을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대신, 알고자 하는 어떠한 노력도 없이 혐오를 택한다는 게 얼마나 속편한 행동인가. 우리는 때로, 내 멋대로 판단해버리고는 마치 그게 진실이고 전부인 양 혐오를 정당화한다. 내 마음에 자라난 혐오는 그렇게 차츰차츰, 아주 무서운 속도로 곰팡이를 피운다. 그러나 조금만 더 들여다 보고, 다르게 바라보면 누군가를 그리 쉽게 미워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지금도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뱀'들이 있다. 나는 <주토피아 2>를 보며 더 뼈저리게 느꼈다. 우리는 언제든 뱀이 될 수 있지만, 지금 당장 내 일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쉽게 외면한다. 마치 나와는 무관한 것처럼. 심지어는 주류에 녹아들고자, 뱀들을 지탄하고 몰아붙이는 데 가세하기까지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의 편에 서는 것보다 쉽고도 안전하니까. 우리는 때로 나의 안위를 위해 남의 불행을 이용한다. 그런데 잊지 말아야 한다. 언제든 다른 잣대를 들이미는 순간 주토피아의 뱀들처럼 사회에서 배척당하고, 소외당하는 건 순식간이라는 걸.
<주토피아 2>는 시즌 1에 이어 차별이나 배척과 같은 현대 사회의 이데올로기를 비춘다. 하지만 나 또한 그다지 떳떳하지 않다. 아무리 경각심을 가지고 누군가를 함부로 평가하지 않고자 마음먹어도, 수많은 가치판단이 내 안에서 무의식적으로 일어난다. 특히 '편견'이라면 치를 떠는 나조차, 자꾸만 타인을 정의하려 들고 내 기준에 맞추어 마음대로 단정짓는 스스로를 매일같이 발견한다. 어쩌면 나는 내가 남들보다 낫다고 믿으며, '타자화'할 뿐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괴리 사이에서 여전히 발버둥치는 이유는 확실하다. 결국 다 똑같은 인간이고, 편협할 뿐이라는 핑계를 대가며 이 현실에 안주한다면 도대체 누가 사회에 목소리를 내고 변화를 추구할 수 있을까. 대체 그렇게 떳떳한 사람이 어디 있겠냐 이 말이다. 이건 자격의 문제라기보단 '의지'에 대한 이야기다. 변화는 '앎'에서 시작된다.
살아가며 나 역시 마찬가지로 어떤 뱀을 소외시키고 있을지 모른다. 나조차 모르게, 아주 교묘하게 말이다. 너무 당연하게 자리잡아 익숙해져버린, 그런 이데올로기에 기대어 누군가를 아주 조금씩 상처입히고 있을지 누가 아는가. 많이 '안다'는 것은 그만큼 괴로울 일이 많아진다는 것이기도 하지만, 괴로움 없이는 나아질 수 없다.
개인적으로 <주토피아 2>가 완전한 '해피엔딩'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뱀들의 억울한 누명을 풀고 보다 나아진 사회로 도약한 건 맞으나, 여전히 그 이면에 또다른 그림자가 드리워 있을 테니. 사실 '완벽한' 사회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나는 ‘happy ending’ 대신 'better path'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싶다. 불완전하기에 더 나아질 가능성을 품고 살아가는 주토피아를 위해, 그리고 이 세상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