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할 때마다 소식을 듣고 종종 영상통화까지 하면서도 늦게 도착한 딸의 궁금증은 미남이에게 쏠렸다.
얼마 전에 조카 사위인 미남이 아빠 생일이었다. 그날은 별일 없이 지나갔는데 다음날 잠에서 깬 미남이가 빕스 왜 안 갔냐고 아침부터 울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벌써 한참 전에 다음 가족 생일 때는 빕스가 자는 말을 지나듯 했었는데 생일날은 잊고 있다가다음날아침에야그 말을 생각해 낸 게 문제였다.
약속을 했으면 가야지 왜 안 데리고 가서 애를 울리냐던 딸은 내일 미남이 데리고 빕스에 가자고 했다.
어린이 집 점심시간이 11시 30분이라 그전에 도착하려면 일찍 집을 나서야 했다.
깜짝 이벤트로 그렇게 좋아하는 이모가 짠 하고 나타나서어린이 집에서 조퇴까지 시켜주니 미남이 기분이야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미남이를 데리고 어린이집 맞은편에서 7분 대기가 뜨는 카카오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낮 땡볕이래 그늘도 없는 곳에서 얼굴을 잔뜩 찡그리며 서 있는데 어린이 집에서 나오는 할아버지 한 분이 보였다.
"어? 우리 한자 할아버지네?"
셋이 인사를 하고 오늘도 한자를 배웠냐고 물었다.
"동쪽 서쪽 알죠? 오늘은동녘동을 배웠어요"
"그럼 그 글자 알아?"
"동녘동 알죠오"
대답에 자신감이 뚝뚝 묻어났다. 그래도 원체 입만 살아서 둥둥 뜨는 미남이다보니행여나 니가?하는 의심이 들었지만정말이냐고 마구마구바람을 잡았다.
"그럼 미남이 동녘동 쓸 줄도 알아?"
"당연히 알죠오"
큰소리를 친 미남이는 글자를 쓰는 건지 그림을 그리는 건지 검지손가락을 펴서 허공에다 네모를 먼저 그리더니어찌어찌동녘동 비슷하게 써냈다.
미남이가 어떤 글자를 쓸지 미리 알고있는 우리는 눈을부릅뜨고 복잡한 퍼즐 맞추듯해서겨우동녘동이란 걸 알아챘지만가르쳐주신 한자 할아버지가 보셨어도 알지 못할이세상에는 없는 창의적인 글씨체로어렵게그려 냈다.
"어머 어머 진짜 썼어"
"이렇게 어려운 글자를 미남이가 쓰다니 말도 안 돼"
한자 한 글자로 얻어먹은 감동이 워낙크다 보니 잠시동안은무더위도 느껴지지가 않았다.
"어떻게 그 어려운 글자를 썼어 미남아?"
"믿을수가 없네 정말믿을수가 없어.
우리가 하도 호들갑을 떨었더니 미남이가 비결을 발설했다.
"어제 배웠는데 오늘 <복수>를 했거든요"
"비결이 복수라고????"
"아아 복수?~~복수를 하면 이렇게 잘하는구나. 미남이 앞으로 매일매일 꼭 복수하자?"
어려운 한자 한 글자를 깨친 미남이는 배운 한자복수하느라 허기가 졌는지 먹방에서나 볼법한 엄청난 식성을발휘해시원하게 본전을 뽑고 나왔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미남이 손을 잡았다. 잡은 손 주인이 나라는 걸 확인한 미남이는 손을 쏙 빼더니 뒤에 서 있는 이모 쪽으로 가서 이모 손을 잡고 내려갔다.
매일매일 복수 잘하면 또 데리고 가겠다고 약속 했는데 지나친 복수는 미남이에게는뇌의 과부하를,이모는카드연체로 인한 신용도 하락의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적당한 복수를 권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