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태근 Mar 22. 2022

먹구름 낀 하늘

놓치는 아름다움에 대하여

요즘 하늘을 올려다보면 항상 먹구름이 가득 껴 있습니다. 태양이 떠 있는 시간이 밤보다 길어지는 춘분이 지나가고 있지만 하늘이 마냥 맑진 않아서 아쉬운 기분도 듭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당신은 이렇게 구름이 가득 껴 있는 하늘을 보면 어떤 기분이 드시나요. 저는 이런 회색빛 하루만 갖고 있는 고유한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를 이 글을 통해 당신께 전하고자 합니다.


저는 지금도 어리지만, 지금보다 좀 더 어릴 때는 이런 날씨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무릇 이런 날씨엔 비도 한 번씩 내리기 마련이고 공기도 평소보다 짙고 우중충합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습하고 묵직한 공기가 폐 안에 들어와 왠지 모르게 가슴이 무거워지는 기분도 듭니다. 갑자기 비가 올까 하는 걱정에 우산도 들고 다녀야 하고, 어쩌다 제가 챙겨 나가지 않는 날엔 꼭 비가 추적추적 내려서 기분이 축 처지는 날씨처럼 느껴졌습니다. 물론 비를 맞은 상황이 더욱 기억에 남아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겠지만,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뿐인가요? 하늘을 올려다보면 복잡한 건물들과 차들은 없고 잔잔하면서도 고요하던 푸르른 하늘은 어두운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습니다. 겉옷과 머리 위를 따뜻하게 내리쬐던 햇살도 약해지고, 세상의 명도도 낮아져 마치 회색빛 필터를 씌운 것 마냥 울적해 보입니다.


이처럼 하늘에 먹구름에 낀 날씨는 괜히 울적한 날씨 같습니다. 저도 괜히 늘어지는 기분을 달래고자 자취방 앞에 있는 태화강변으로 산책을 나갔습니다. 드넓은 우주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던 칠흑 같은 하늘은 구름 때문에 이상하게 주황빛과 보랏빛이 도는 회색으로 밝아져 있었고 주변 조명이 밝지 않은 덕에 곳곳에 보이는 별들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나름대로 분위기 있는 하늘이었지만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별들이 보이지 않음에도 은은하게 빛나고 있던 달은 아쉬웠던 기분이 무색하게 아름다웠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노래 가사처럼 별도 셀 수 없었고 달도 밤하늘의 진주처럼 밝고 또렷하게 빛나고 있진 않았지만, 구름에 가린 별의 빈자리를 채워 주기라도 하듯 구름을 타고 달빛은 더욱 넓게 퍼지고 있었습니다. 평소보다 밝아 보이는 밤하늘도 어쩌면 우중충했던 구름을 타고 달빛이 번져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니, 우중충하게 느껴지던 날씨도 나름의 아름다움이 너무 잘 보였습니다.


운 좋게도 그날의 달은 보름달처럼 보였습니다. 평소 같음 보름달이라 생각했을 저지만, 얼마 전 친구에게 보름달이 떴다고 했을 때 조금 덜 찬 것 같다는 말을 들었던 게 생각나, 계속 보고 있자니 조금 이지러진 것 같아 보이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달이 덜 찼던 건지 그저 제 마음이 그랬기에 그렇게 보였던 것인지는 집에 돌아온 후에 음력 14일이었단 것을 알게 되었지만, 하늘이 맑지 않았던 덕에 조금 모자란 달도 보름달처럼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세상 모든 것과 우리에게 닥쳐오는 모든 일이 긍정적이고 아름답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지나온 과거 중에서도 분명 그랬던 순간이 있겠지요. 하지만 그런 부정적인 것들에 휘둘리다 보면, 어떤 것이 가지고 있는 따스하고 아름다운 면을 보지 못하고 부정적인 면만 마주한 채 흘려보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먹구름이 낀 날씨도 어떻게 보면 너무나 아름답고 낭만적입니다. 한 번씩 먹구름 사이로 해가 고개를 내밀고 약하게 내리쬐는 햇빛은 어쩌면 맑은 날의 그것보다 더욱 반갑기도 합니다. 제가 그랬던 것처럼, 당신의 아쉬움이 남는 일도 그 일이 있었기에 당신에게 찾아온 행복한 순간이 있었을 것이라 믿습니다. 슬픈 일이 있다면 충분히 슬퍼하고 후회할 일에 대해서는 충분히 후회하며 우리는 성장합니다. 그러나 때로 과한 슬픔이 밀려오겠지만, 이에 사로잡히지 않고 긍정적인 부분까지 바라볼 수 있는 시선도 삶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데 좋은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오늘도 여전히 먹구름이 가득한 하늘입니다. 곧 찾아올 화사하고 푸르른 봄날을 기다리며 저는 산책을 나가 오늘의 아름다움을 바라볼 것입니다. 만약 당신에게도 회색빛 하늘이 조금 아름답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저에게도 너무나 행복한 일일 것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강보단 바다지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