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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민준 Sep 18. 2021

달이 머무는 바닷가

밤 바닷가에 풍차와 등대 그리고 커피 잔에 세 개의 달이 머문다

7월 초, 이른 아침에 고속도로를 달려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차에 두고 온 핸드폰이 생각났다. 휴대전화를 챙기지 못해 아쉬웠지만, 하릴없이 제주도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휴대전화 없이 다니는 것은 마치 영혼을 잃어버린 것같이 허전했다. 


숙소에 짐을 풀고 함덕해변을 걸으며 코로나19로 답답했던 가슴을 열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비릿한 내음과 시원한 바다 풍경에 빠져 해수욕을 하며 잠시 시름을 잊었다.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나니 비가 쏟아진다. 그래도 어렵게 나선 여행이니 빗속에 서행하며 바다 풍경이 좋은 월정리 해변으로 차를 몰았다. 해안도로를 달리며 바다에 우뚝 선 풍차에 시선이 갔다. 바람에 바람개비가 돌 듯 빗줄기에 의지해 풍차가 도는 것은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인간세계와 닮은 듯하다.

  

월정리 해변에 도착해 해변 풍경과 멋지게 조화를 이루는 S카페에 들어섰다. 카페 1층은 먼저 온 여행객으로 만원이다. 에메랄드빛 바다 풍경이 잘 보이는 2층도 손님이 먼저 자리 잡고 있어 빈자리가 없다. 우리는 왜 풍경 좋은 자리를 선호할까? 아마도 자연의 품이 그립고 삶의 안식처가 필요한 건 아닌지 생각해 본다. 힘든 일상은 풍경 좋은 곳에서 망중한을 즐기며 위안을 받기도 하고 희망을 얻기도 한다. 

1층 창가 빈자리에 안내받아 바다와 마주 보고 앉았다. 창밖의 조용한 바다 풍경은 천천히 돌아가는 오래된 필름 같다. 굵은 빗줄기가 유리창을 때릴 때는 ‘김창렬 물방울 화가’의 작품과 흡사하다. 스멀거리는 욕망과 삶의 무게에 지친 피곤한 세상살이에도 아무 일 일어나지 않는 축음기판처럼 돌아가는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비를 실은 먹구름이 빠르게 이동하는 월정리 하늘 풍경은 파티줄 조명 전구가 빛나며 운치를 더한다. 모래톱으로 밀려드는 파도는 마라톤 선수처럼 순차적으로 도착해 쓰러진다. 비가 잠시 소강상태를 보일 때 서핑복을 입은 사람들이 나타나 모래사장에서 파도타기 강습을 시작한다. 초보자는 모래톱에서 강사의 구령에 맞추어 보드 위에서 일어섰다 앉기를 반복하며 중심을 잡는다. 청춘 남녀가 빗속에서 젊음을 뽐내는 모습이 부럽다. 청춘의 상징인 젊음을 시기라도 하듯 비가 다시 퍼붓는다. 바람이 세지고 비가 억수 같이 내려도 진지한 표정이다. 청춘이 이래서 좋은 건가. 추울 만도 한데 훈련이 싫다고 대열을 이탈하는 이가 없다. 비 내릴 때나 햇볕이 모래톱을 달굴 때나 바다에서 젊은이들의 파도타기 장면은 월정리 여름의 진풍경이다.

  

바닷가에는 서핑을 즐기러 온 사람들이 파도를 이용해 파도타기를 시도한다. 넘실대는 파도에 보드를 태우고 엎드려 양팔을 빠르게 젓는다. 보드 위에서 벌떡 일어나 멋진 자세를 잡고 파도에 몸을 맡긴다. 빗속에 멋진 동작으로 파도타기를 즐기는 열기가 해변을 달군다.

  

카페 앞 해안도로에 자전거 행렬이 지나간다. 비를 맞으면서도 무엇이 좋은지 신나서 웃으며 페달을 밟는다. 친구들과 추억을 만들며 우정을 다지는 자전거 그룹이 멀어져 간다. 우비로 배낭을 가린 연인이 손잡고 걷는 모습은 ‘좋을 때다,’라고 미소 짓게 한다. 

  

누구든 세상살이가 녹록지 않아 삶이 버거울 때가 있다. 요즘엔 또 무슨 생각이 그리 많은지···. 바람에 몸을 맡긴 풍차처럼 어지럽게 머릿속을 맴도는 상념이 나를 괴롭힌다. 해안도로 군데군데 저 멀리 차가운 바다에 발을 담근 우람한 풍차의 위엄이 압도적이다. 공중에 떠 있는 뜨거운 심장이 회전날개를 돌게 한다. 바람을 직시하는 수직의 삶을 살며 거인처럼 바다에 우뚝 선 풍차는 마치 수컷의 용맹함을 보는 듯하다. 그는 바람의 위력과 시기와 질투를 한 몸에 안아 위로하고 보듬는다. 바람은 비로소 그에게 도착하여 의미를 발견하고 그를 이해한다. 풍차는 바람의 정신을 참되고 바르게 인도하고 바람은 풍차를 통과하며 도리를 깨닫는다. 

  

풍차의 기개를 보며 어느덧 지천명이 되어 모진 인생의 질곡을 맞은 사람들을 생각한다. 예상치 못한 걱정·슬픔·두려움을 잠시라도 잊을 수 있는 일을 찾아 야금야금해 보라고 제안한다. 가랑비에 옷 젖듯 해야 즐거움이 커지고 꾸준함으로 이어진다. 하루를 충실히 보내며 발견한 소소한 기쁨과 즐거움은 삶의 고단함을 달래준다.

  

짙푸른 바다와 늘 푸른 하늘의 월정리 풍경에 가족의 행복을 담는다. 가족과 함께 떠난 여행 속에서 나를 위한 안식을 찾고 마음을 위로 받는다. 에메랄드 및 파란 바다와 늘 푸른 하늘이 맞닿아 품어내는 열기는 여행객들의 고향 같은 곳이다. 오랫동안 꿈을 그리던 사람은 그 꿈을 담아가는 바닷가에 만인의 파도가 밀려든다. 밤 바닷가에 풍차와 등대 그리고 커피 잔에 세 개의 달이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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