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은 어떤일을 하시나요?...>
“당신은 기획자세요? 디자이너세요? 개발자 인가요?”
이런 질문을 받으면 종종 말을 고르게 되게 될 때가 있습니다. 같은 업계에 있지 않은 경우는 더더욱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설명하기가 어렵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명함엔 뭔가 적혀 있지만, 내가 하는 일은 그것 하나로 설명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그럴 것 입니다. 저 역시도 PO였지만 고객지원 답변도 하고, 리서치도 했고, 여러 회의에도 참여했습니다. 이처럼 어느 날은 내가 진짜 하는 일이 무엇일까? 라는 기분이 들 때가 있으실 겁니다.
‘내가 맡은 일’은 분명히 존재하는데, ‘내가 누구인가’는 모호해진다. 역할의 이름과 실제 행동이 다를 때, 우리는 포지션 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마련입니다.
이 글에서는 그 혼란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를 다섯 가지 실제 기업 사례를 통해 들여다본다. 각 회사는 다른 방식으로 ‘직무의 경계’와 싸웠고, 우리는 그 속에서 나만의 해석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이런 질문을 겪은 기업들이 있다고?...>
개인도 개인대로의 고충이 있지만, 기업 역시도 해당 부분에 명확한 제시를 하지 못해 이런 질문을 받게된 경우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사례들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1. Airtable – “우리는 누가 뭘 하는지도 헷갈렸다”
Airtable은 ‘누구나 데이터베이스를 쉽게 만들 수 있게 하자’는 미션을 가진 미국 SaaS 스타트업입니다.
회사가 빠르게 성장하던 어느 시점, 문제는 터졌습니다. 팀원들이 여러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면서 기획, 개발, 마케팅의 경계가 흐려졌고, 한 명이 여러 회의에 끌려 다니는 상황이 반복됐다고 합니다.
“혼란의 원인은 팀원 개개인이 아니라, 프로세스의 부재였다. 역할을 정의하지 않은 채 책임만 부여했기 때문이다.”
Airtable은 이후 역할 중심에서 프로세스 중심으로 운영 체계를 전환했습니다. 직책보다 ‘행동 플로우’를 먼저 짜고, 자연스럽게 책임자(R&R)가 도출되는 방식을 채택 했습니다.
✅ Insight: 포지션 정체성의 혼란은 ‘사람’보다 ‘시스템’ 문제일 수 있다.
2. Intercom – “우리는 UX만 믿고 있었다”
Intercom은 한때 자사의 모든 의사결정을 UX 디자인 중심으로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제품 실패가 반복되자 Paul Adams VP는 블로그에 글을 기재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너무 UX 전문가로 여겼고, 제품의 본질을 잊었다.” 그는 제품 성공을 위해서는 마케터, 엔지니어, 세일즈까지 모든 포지션이 협업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하나의 포지션이 ‘중심’이 되면, 나머지 역할은 수동적으로 변하고, 결국 조직은 한쪽으로 쏠리게 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죠.
✅ Insight: ‘중심 포지션’이라는 허상은 조직 내 모든 사람의 정체성을 흔든다.
3. Basecamp – “내가 다니는 회사가 더 이상 나와 맞지 않는다”
2021년, Basecamp는 내부 정치적 대화를 금지한다는 조직 방침을 발표했습니다.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전체 직원의 1/3이 퇴사했고, 그 중엔 핵심 엔지니어와 리더들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포지션이나 업무 이전에, 소속된 집단의 가치가 개인의 정체성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를 보여줍니다.
“일을 잘 하고 있었지만, 내가 누구로 여겨지는지가 달라졌어요. 그래서 떠났어요.” (당시 퇴사자 인터뷰 중)
✅ Insight: 포지션 정체성은 ‘역할’만이 아니라 ‘속한 공간’과 ‘가치’에서 비롯된다.
4. Stripe – “넌 디자이너니까 이건 안 해도 돼? 그런 건 없다”
Stripe는 PM, 디자이너, 엔지니어를 철저하게 ‘문제 기반 팀’에 배치합니다.
직책에 따라 하는 일이 아니라, 문제를 중심으로 필요한 일을 누구나 하는 구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디자이너가 API 구조를, 엔지니어가 유저 인터뷰를 담당하는 것도 드물지 않습니다.
이는 직무 정체성의 혼란을 일으키는 대신, ‘문제 해결자’로서의 정체성을 부여하고 해당 문제해결에 따른 적합한 보상을 주기도 합니다.
✅ Insight: 포지션은 ‘타이틀’이 아니라 ‘문제 해결 관점’에서 재구성될 수 있다.
5. Notion – “PM이 없는 제품팀도 존재할 수 있다”
Notion은 꽤 오랫동안 Product Manager 없이 제품을 만들어왔습니다.
그 대신 디자이너와 엔지니어가 기획부터 인터뷰, 우선순위 결정까지 모두 수행하곤 합니다. PM의 정체성을 분산시킨 구조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공동창업자 Ivan Zhao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Notion의 철학은, 사용자가 필요로 하는 기능을 직접 만나는 사람이 그것을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포지션 정체성은 ‘직무명’이 아니라 ‘태도’와 ‘대응 방식’으로 결정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Insight: 나의 역할은 조직이 붙여준 이름보다, 내가 선택한 행동의 집합이다.
< 나는 누구로 불리고 싶은가, 그리고 누구로 기억되고 있는가..?...>
스타트업에서 ‘나의 포지션’은 정해진 게 아니다' 라고 볼 수 있습니다.
회사 안에서 유동적으로 바뀌고, 문제의 흐름에 따라 기능이 나뉘며, 때로는 조직 문화나 가치관에 의해 정체성 자체가 흔들리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그 변화 속에서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나는 어떤 직함을 가지고 있는가가 아니라, 나는 지금 어떤 역할을 하고 있고, 어떤 존재로 여겨지고 있는가를...
✓ 마치며
정체성은 늘 이름보다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경계를 스스로 재정의 할 수 있어야 하며 그 정의에 대해 모호해 질 때 Basecamp 에 핵심인재들이 선택한 것 만큼의 과감한 선택도 마다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장성 까지 잃어버리는 최악의 선택은 과감하게 버려야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