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 빼앗은 집중력, 차가 되찾는 몰입>
화면은 우리의 눈을, 알림은 우리의 귀를, 속도는 우리의 마음을 쪼개고 있습니다. 우리는 ‘집중’이 아니라 ‘전환’을 반복하며 살고 있는 셈이죠
회의 중에도 메신저를 보고, 대화를 나누며 이메일을 확인하고, 쉬는 시간에도 영상을 재생하곤 합니다. 집중의 시대는 끝났고, 지속적인 주의 분산의 시대가 왔습니다. 기술은 모든 일을 동시에 하게 해줬지만, 그 덕분에 우리는 아무 일에도 완전히 몰입하지 못하게 되버렸습니다.
손은 바쁘지만 마음은 산만하고, 생각은 연결되어 있지만 감정은 멀어져만 가고 있습니다.
‘효율적인 하루’를 살지만,
그 안에 ‘깊은 순간’은 점점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집중이 아닌 몰입을 배워야만 합니다. 몰입은 한 가지에 오래 머무는 능력이 아니라, 하나의 행위 속에서 세상을 잊는 능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건 차를 우릴 때처럼, 오직 한 가지 동작에 온 감각을 모으는 기술입니다.
<몰입은 외부를 차단하는 게 아니라 내 안의 감각을 다시 통합하는 일이다.>
기술은 우리를 빠르게 이동시켰지만, 그 속도 속에서 존재의 농도는 옅어졌습니다. 우리는 화면 속에서 연결되어 있지만, 스스로와의 연결은 느슨해져 버렸죠.
차를 마시는 시간은 그 끊어진 연결을 복구하는 의식입니다.
한 모금의 온기가 혀끝을 지나 몸 안으로 번질 때, 생각의 파편들이 하나의 선으로 정렬되곤 합니다. 이건 성취가 아니라 회복의 리듬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몰입은 집중이 아니라 머무름과 맞닿아 있습니다. 그 머무름 속에서 인간은 다시 인간이 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오늘의 차 : “몰입은 집중이 아니라 머묾이다.”
<추천 차 : 말차(抹茶, Matcha – 일본 우지(宇治)산)>
말차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다도의 중심’에 있는 의식이라고 표현합니다. 가루를 체에 걸러내고, 물의 온도를 맞추고, 거품을 내는 전 과정이 집중의 리추얼로 설계되어 있죠. 이 모든 동작은 빠를 수 없고, 반복될수록 더 깊어진다고 합니다.
한 모금의 말차는 맛보다 움직임의 리듬을 기억하게 만들고, “몰입은 집중이 아니라 머묾”이라는 이 장의 메시지와 완벽하게 일치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말차의 쌉싸름한 첫맛은 산만한 마음을 단번에 정돈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그것은 감각의 리셋, 곧 기술의 시대에 잃어버린 몰입의 회복이라고도 생각됩니다.
물을 데우고, 향을 느끼고, 한 모금 마시는 단일한 행위, 그 몇 분의 과정 안에 시각, 청각, 후각, 촉각이 동시에 깨어날 수 있다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