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양 8

EP 8. 모두가 가진 사연

by 철쭉
6학년으로 올라갈 때 즈음

어느 정도 형편이 나아졌는지,

누나와 나는 다시 고향인 전주로

돌아와 부모님과 함께 살 수 있었다.


2학년까지 다녔던 초등학교에

다시 6학년으로 전학을 온 탓에

나를 알아봐 주는 또래들이 꽤 많았다.

하지만 1, 2학년 때의 내 성격과

6학년 때의 내 성격은 많이 변해있었다.




중학교에 올라가서는 더 이상

내 인생에 전학을 다니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초등학교 6년이라는 시간 동안

5번의 전학과 잦은 이사로

너무나 많은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며

나는 확실히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이 되었다.


나는 여러 명의 친구대신

정말 친한 한 두 명과의 관계가 좋고 편했다.

서른이 넘은 지금도 내 인간관계의 폭은

아주 좁은 편이다.









중학교 1학년 같은 반에

바로 옆자리 짝꿍을 하게 되며

친해진 친구가 있었다.

항상 웃고 있는 행복한 얼굴에

별로 재미없는 말에도 빵빵 터지는

유쾌한 성격을 가진 친구였다.

나는 항상 이 친구를 보며

'뭐가 저렇게 좋을까..'라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



이 녀석은 이유 없이 나를 정말

좋아하고 잘 따랐는데,

어느정도였냐하면

당시 미술에 재능을 보이던 나를 위해

새어머니의 배려로 동네의

작은 미술학원을 다닐 수 있었다.

이 친구는 학원에 다니지도 않았는데

늘 나와 함께 학원 봉고차를 타고

학원에 같이 갔고, 학원 근처 놀이터에서

내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다가

같이 학원 차를 타고 집에 갈 정도였다.





어두운 면이 있던 내가

친구의 긍정적인 기운을 받아

많이 밝아질 수 있었고,

나에 비해 너무 착하고 순진한

친구를 보며 무언가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의 어머니께서 아들이 너무나

좋아하는 친구의 얼굴이 궁금하시다며

밥을 차려주고 싶어 하셨고,

친구의 초대로 나는 처음

이 친구의 집에 놀러 가게 되었다.



아직 만나 뵙진 못했지만

어머님께서 나를 정말 좋아해 주신다는

말을 듣고 정말 감사했던 기억이 난다.

나를 좋아하는 어른이라는 말은

처음 들어보았기 때문이다.



미술학원 봉고차는 항상 우리 집 근처에서

친구와 나를 내려주었고,

친구는 그곳에서 자전거를 타고 집에 갔었다.

친구의 집이 우리 집에서 어느 정도

떨어진 곳이라고만 알고 있었지

실제로 어디인지는 잘 모르고 있었다.


그날은 학원을 마치고 친구의 집에서

밥을 먹기로 한 날이었기에

친구는 자전거를 가져오지 않았고,

나와 친구는 같이 친구의 집 쪽으로 걸어갔다.

생각보다 멀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 야. 도착하려면 아직 멀었어??"



" 아 이제 다 왔어. 저기 보이는 골목이야!"









주택가가 아닌 간판들이 화려한

역 근처의 유흥가 속

마침내 도착한 내 친구의 집은,

오래된 여인숙의 한 호실이었다.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나는 어떠한 내색도 하지 않았다.



앞서 걷던 친구가 삐그덕 문을 열자

어머님께서 너무나 반가운 얼굴로

나를 맞이해 주셨다.



" 네가 ○○이구나!! 잘 왔어. 반갑다!!"



" 네 어머니 안녕하세요.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를 반겨주시는 어른의 모습이

무지 어색했지만 나는 최선을 다해

밝게 어머님의 인사에 화답했다.



어머님 뒤에 서있던 친구의

어린 여동생이 날 보고 활짝 웃으며

꾸벅 인사했다. 옆에 놓인 작은 밥상에는

짜장면과 탕수육이 준비되어 있었다.



" 괜히 내가 맛없는 거 해주는 것보단

이런 걸 더 좋아할 거 같아서!!

많이 먹으렴."



어머님께서는 식사 중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헤어지면서

형편이 힘들었지만,

두 자녀가 밝게 자라주어서

너무 기특하고, 아들이 중학교에 가서도

좋은 친구를 만난 것 같아 기쁘다고 하셨다.





하지만,


너무나 좋은 말씀들이었는데,

나는 어머님의 말씀에

집중해 드리기가 너무 힘들었다.






벽 너머로 들려오는 여성의

야릇한 신음소리 때문이었다.




벽이 있나 싶을 정도로

주변 방의 모든 소리가 다 들렸다.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

남 녀의 대화소리, 티브이소리,

쿵쿵거리는 소리까지ᆢ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러한 환경 속에서 어머니와

여동생과 함께 지내온

내 친구 생각을 하니,

마음 한편이 아려왔다.






" 조심히 가고, 다음에 또 놀러 와!!

그땐 더 맛있는 거 해줄게."



친구는 나를 데려다주겠다며

따라 나오려 했지만 극구 말려

집에 두고, 혼자 나와서 조용히

집까지 걸었다.






많은 생각이 들었다.







세상엔 각기 정말 많은 사연들이 있지만,

모두가 최대한 내색 없이 살아간다는 것.

항상 너무나 밝았던 내 친구의 삶도

결코 행복하기만 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나니, 늘 힘들게 살아왔던 내 마음속에

무언가 따듯한 위로가 되었다.






이 친구와 나는 지금도 자주 보며,

어머님은 지금도 나를 한 번씩

집으로 초대해 주신다.

지금은 여인숙이 아닌 평범한

연립주택이지만, 나는 이 집에 갈 때마다

어릴 적 느꼈던 따스한 위로를 느낀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