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양 1

EP 1. 너무 행복한 때는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by 철쭉
나는 어릴 적 소양이라는 시골에 살았다.






전라북도 전주 근교에 있는 곳인데,

지금은 유명한 대형 카페도 몇 개 들어서고

벚꽃 거리 등 이것저것 볼거리가 많아져

전주시 및 완주군의 주민들이

휴일에 많이 방문하는 곳이다.




나는 이곳에서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살았었는데,

남아있는 기억은 아주 단편적이다.


내가 마당에 나오면

바닥에 얼굴을 박으면서까지

뛰어나오던 수많은 새끼 강아지들.

집 앞 작은 강가로 거위들을 데리고 나가

물속에서 수면 쪽을 바라보았을 때

거위들의 발바닥이 바둥거리는 모습들

정도만이 그나마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기억이 닿는 내 인생 중,

유일하게 일어나서부터

잠드는 순간까지

어떠한 걱정 하나 없던 그런

순수했던 시절이랄까?




신기하리만큼 가족에 대한 기억은

거의 남아 있지 않은데,

내가 무언가 잘못을 하자

엄마가 종아리에 회초리로 매질을 했던

선명한 기억이 하나 있다.

그러고 나서 연고를 발라주시며

나를 따듯하게 위로해 주신 기억이 있는데,

그게 내가 기억하는

소양에서의 엄마에 대한

기억의 거의 전부다.








나는 2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는데,

소양에 있을 당시에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살아계셨고,

내가 태어났을 때 할머니는

치매가 아주 심하신 상태였다고 한다.

내 왼쪽 눈썹 위에는 눈썹 방향을 따라서

꽤 긴 흉터가 있는데, 그 당시 방에서

크게 우는 소리가 나서 엄마가 뛰어가 보니

나는 피범벅이 된 채로 울부짖고 있었고

할머니께서 하얗게 질린 얼굴로

벌벌 떠시며 칼을 들고 계셨다고 한다.




"어머니,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어떻게 된 거냐고 엄마가 할머니를 향해

와락 소리를 지르자,

할머니께서는 당황해서인지

아무 대답을 못하셨다고.


나는 이 사건에 대한 기억도 없고

할머니의 얼굴조차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려도 너무 어린 시절은 마치

필름이 끊긴 것처럼

아무 기억도 없지 않은가?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

나의 상태는 그랬던 듯하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가 갑자기 실종되셨고

마을 사람들이 횃불을 들고

온 동네와 산을 뒤지며 찾았는데

결국 마을 뒷 산 어딘가에서 발견되셨다.

한쪽에 신발을 고이 잘 벗어두고,

평소에 주무시는 모습대로 그대로 누워서

돌아가신 상태로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나중에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참 허무하다는 느낌을 어릴 때 받았던 것 같다.




그나마 할아버지는 기억이 나는 걸 보면

할머니가 먼저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딱 한 장면이 기억이 난다.

내가 옥상에 올라가자 곡식을 털고 계시던

할아버지가 내려가라고 호통을 치신 것.

무서워서였을까? 그 장면이

할아버지에 대한 내 유일한 기억이다.


아버지는 당시 읍내에서 슈퍼마켓,

요즘 말로 슈퍼마켓이지 사진을 보면

당시에 동네에 작은 구멍가게를 하셨는데

일흔이 다 되신 지금도 정말 미남이지만

당시 사진을 보면 정말 남자답고 멋졌다.

이제 내가 당시의 아버지의 나이를

넘어선 것을 생각해 보면,

그 당시 아버지는 세 아이의 아빠였지만

그와 동시에

정말 아직 어린 청년일 뿐이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아버지는 가게에서 팔 물건들을 떼러

전주를 자주 왕래 하셨는데,

소양에서의 아버지에 대해 기억나는

장면은 거의 없으나,

아버지의 파란 봉고차가

집 앞 작은 다리를 건너

마당에 들어올 때,

수많은 강아지들과 뛰어 나가던

그 설렘은 아직 기억이 난다.





삶 속에서 가장

걱정 근심 없던 행복한 시절,

왜 애석하게도

그때의 기억은 거의 없는 걸까?



그렇게 내가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어질 무렵,

내가 소양을

떠날 수밖에 없는 일이 일어난다.


그리고 너무나 슬픈 이별을 겪게 된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