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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한 Jan 13. 2024

자기소개

 중학교 무렵부터 학교에서 자아, 정체성이라는 단어를 부쩍 많이 가르치면서 '나'는 누구인지 '나'의 지향점은 무엇인지 따위의 고민을 시킨다. 나의 전공인 정치외교학과에서도 정체성은 아주 중요한 키워드인데, '정체성'이라는 단어를 볼 때마다 자꾸만 나의 애매모호한 정체성을 돌이켜본다. 나만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나'를 특정해서 말하는 게 어렵다.

 

 나는 근면성실이라는 강력한 신념과 무뚝뚝한 성격을 가진 부모님 슬하에서 자랐고 나와는 아주 다른, 가끔씩 '내가 진짜 주워온 딸인가?' 싶게 만드는 나와 아주 다른 동생이 있다. 그럭저럭 조용한 학창 시절에 공부를 썩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은 내성적인 학생으로 살았고, 현재는 그냥저냥 적당히 사람들이 알아주고 잘릴 걱정이 딱히 없는 직장에 다니고 있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 평범한 여자애들처럼 분홍 토끼가면이 아닌 빨강 노랑 호랑이 가면을 사주는 부모님 덕분에, 항상 평범하게 살기를 지향했지만 때때로 남들과 다르게 틔고 싶은 성향을 가진 사람이다. 유행에는 절대 뒤 쳐 저서는 안되지만, 남들에게 유니크하게 보이고 싶다.

 나는 갈등을 싫어하다 보니 친절이 장점이 되는 이 시절을 개탄스러워하면서도, 희한하게 가까운 사람들한테는 화와 짜증을 잘 내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지 않으면 괴롭다. 밖에서 만난 사람은 나를 보고 가스라이팅 당하기 쉽겠다며 나를 물 같은 사람이라고 하지만, 나의 가족과 내 남자친구는 나는 고집불통 상전에 예민보스 불같은 사람이라고 한다(이 점은 고치려고 하고 있다).

 나는 다행히도 자기소개서 없이 취직에 성공하여 내가 누구인지 깊게 고뇌하지는 않았지만, 가끔씩 내가 누구인지, 나는 왜 이모양인지 자괴감에 빠지 한다. 부모님과 친구들을 떠나 타지에 정착하게 되면서 혼자인 시간이 부쩍 늘어나다 보니, 그리고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자유를 맛보니 나의 시선이 내게로 향하는 것 같다.


 이런 알 수 없는 모순덩어리인 나를 딱 맞게 소개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를 소개하는 건 나만 할 수 있지만 더불어 나한테 제일 어려운 숙제다. 인터넷이 이미 존재했을 때 태어난 사람이지만 인터넷에 이렇게 글을 남기는 것은 처음이다. 용기와 시간을 내서 나를 기록해보려고 한다. 나를 찾기 위해, 내가 누구인지 기록하다 보면 훗날 그럴싸한 '자기소개거리'가 생기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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