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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이피 Nov 28. 2023

행복의 종착지

11월 마지막 글

  

 어릴 쩍부터 어른이 되기만을 기다려왔다. 내 나이는 어느덧 어른이라 칭할 숫자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마음 한편엔 아직 난 진정한 어른이 아닌 것 같다. 진정한 어른에 대해 생각해 본다. 세상의 경험이 많아 쓴맛부터 단맛까지, 별의별 맛을 다 맛본 걸까. 아님 생각하는 게 성숙해 진걸까. 아니면 지나간 세월 속 깨달은 게 많은 사람인 걸까. 숫자만 어른이 아닌 내면이 성숙한 어른은 어떻게 되는 걸까. 이러한 고민은 '너 어른스럽다."라는 말을 듣고 생기기 시작했다.


 도대체 뭐가 어른스럽다는 거지? 새로운 사람들과 삶을 공유하며 내 생각을 말하거나, 내가 쓴 글을 읽을 때 "너 되게 어른스럽다."라는 첫 반응이 가장 많았다. 그런 반응들을 보면 난 속으로 중얼거린다. "큰일이다. 사실 난 밥 한번 지어본 적 없고, 빨래도 밀리고 밀려 한꺼번에 세탁방에 가져가 책임을 떠넘기는 무계획, 무책임한 사람인데. 흔히들 혼자 잘 놀 줄 알아야 어른의 내공이 깊다고들 말하지만 아직 난 친구들과 술 마시는 게 더 즐거운데. 언젠간 들통나겠지?" 하며 말이다. 마음 한편에 어른스러워 보여야 한다는 압박감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이러한 속마음이 내 모습을 숨기는 것 같았고 계속되면서 나는 생각한 게 있다. "아, 어른스러워 보이는 건 중요치 않구나." 어른인 사람이 어른스럽지 않은 사람보다 무조건 우월한 존재라는 헐거운 논리에서 빠져나와야겠구나. 어른이 꼭 될 필요는 없다. 진정한 어른은 "나 어른이야!"하고 소리치지 않는다. 어른 대접을 해달라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답게, 그녀답게, 결국 나답게 행동한다. 중요한 건 진정한 어른이 되는 것보단 진짜 내가 되는 것이었다.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진 못해도 자기만의 방식대로 그것을 묽게 희석하려 할 때,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외치는 꿈을 꾸더라도 나 자신을 위해 일정하게 거리를 좁혀나가려 들 때 진정한 어른이 아닌 '나다운 사람'이 되는지도 모른다. 진정으로 나자신에게 솔직해질 때야 말로 진정한 꿈을 꿀 수 있고, 나를 사랑할 수 있고, 마음 가장 안구석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을 돌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야 말로 요동치고 있는 마음에 남겨진 소중한 이들과 나 자신의 과거와 추억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일이 아닌가 싶다.  



 

  오랜만에 빵이 먹고 싶어 빵집에 들어갔다. 평소엔 잘 먹지 않는 초코 브라우니와  블루베리 베이글을 골라 카운터로 가져갔다. 군복을 입고 있어서 그런지 사장님께선 아무 말 없이 땅콩 크림빵과 우유크림빵을 더 챙겨주셨다. 먼저 받은 호의에 약간은 감동이었다. 사장님의 따뜻한 마음 덕분에 오늘은 행운 가득한 나에겐 특별한 날이 된 것이다. 


 빵을 사고 부대로 복귀하기 위해 택시를 잡았다. 사고를 낼 것처럼 앞차를 추월하는 다른 포천택시 기사님들과는 달리 오늘 만난 기사님의 운전엔 굉장한 배려심이 느껴졌다. 잠시 택시기사님을 쳐다봤는데 문득 뇌리에 친할아버지가 스쳐 지나갔다. 기사님은 연세가 좀 있으셨고 내 마음은 굉장히 먹먹해졌다. 우리 친할아버지도 굉장히 늦은 연세에도 직장을 다니셨기 때문이다. 이 연세에도 열심히 밤운전을 하시고 배려차원에서 신경 쓰며 운전해 주신 것에 대한 감사함과 존경심이 생겼다. 덕분에 친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떠오른 밤이었다.  그래서 난 오늘 빵 집 사장님으로부터 받은 행운을 기사님께 나눠드리기로 했다. 가장 먹고 싶어 주머니에 챙겨놓은 초코 브라우니를 기사님께 내밀었다. 행운을 공유했다는 생각에 오히려 내 기분이 더 좋아졌다. 선물을 받는 사람보다 주는 사람이 더 기쁜 것처럼 말이다. 


 속으로 생각했다. "저 기사님께 예쁜 손녀, 손자가 있다면 그 아이들에게 내가 준 빵을 주면 좋겠다."라고 말이다. 빵 집 사장님이 베푼 한 번의 호의가 세 사람에게 행운을 가져다준 셈이다. 행복이란 눈덩이를 굴리고 굴려 서로에게 전달하며 작게 시작한 행복을 더욱 크게 부풀렸으면 좋겠다. 행복의 나비 효과 말이다. 작은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에선 소용돌이친다. 선한 마음을 가진 모든 이가 행복해진다. 누군가에겐 희망의 등불이 될 것이며 살아갈 힘이 생길 것이다. 심신이 지친 사람에겐 위로가 되어 줄 것이며, 인생을 숙제처럼 풀어 살아온 이들에겐 녹은 초콜릿을 삼킬 때 느끼는 잠깐의 달달함을 선사할 것이다. 사장님이 건네준 크림빵에는 그런 의미가 담겨있다. 적어도 나만큼은 그렇게 믿고 싶다. 




행복에 대한 정의는 그만 내려도 될 것 같습니다. 제가 느끼고 말해온 것들입니다. 앞서 쓴 글처럼 정말 별거 없다고 느낍니다. '행복' 시리즈는 마무리 짓겠습니다. (더 하다간 진부해질 것 같습니다.) 좀 더 재미있는 글을 적고 싶습니다. 참신한 글을 고민 중입니다. 가볍게 읽을 수 있지만 내포된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은 글을 적고 싶습니다. 위트가 느껴질 만한 글이 잘 안 떠오릅니다. 엉덩이 하나만은 무겁게 우선 열심히 끄적여보겠습니다. 엉덩이로 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머플러랑 패딩 따땃하게 챙겨 입으세요오. (추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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