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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윈이야기 Jun 10. 2021

'반려' 동물이라 할 수 있나요?

의무를 다하겠습니다, 권리를 주세요.

산책은 즐거움이다. 

생각에 갇히고 근심에 잠겼을 때, 안 풀리는 마음에 저녁 먹은 배가 묵직할 때-  

다윈과 함께 걸으며 바람을 쐬면 모든 게 조금씩 상쾌해진다. 내딛는 걸음 속에 생각을 정제하고, 잠깐 앉아 멍타임을 가지면 산만했던 머리 속도 멍-청한 사람이 된다. 좋다! 신선한 새벽바람을 느끼며 함께 뛸 때는 '러너스 하이'인지, 다윈의 웃음 때문인지_ 하루를 시작함에 그저 감사의 마음만이 벅차오른다. 함께 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살아 있다는 이 지극히 단순한 사실에도.   

    

물론 어떤 때는 수행해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넘치는 활기와 에너지를 주체 못 해- 하루에도 두세 번이나 걷고, 공놀이를 하고, 원반도 던지고, 달려야 한다. 날이 궂어도, 내 몸이 안 좋아도, 일이 바빠도- 최소한으로 지켜야 할 일이다. 이 생명에 대한 책임이니까.   

  

끝이 아니다. 

때로 산책은 평온한 일상에 불쾌와 갈등, 논란이라는 균열을 내는 사건 그 자체가 된다. 

공원은 점점 사라져만 가고, 그나마 함께 즐길 수 있었던 곳은 나무를 베고 풀을 뽑아낸다. 그저 냄새만 킁킁댈 수 있게 해 주면 좋겠는데, 말뚝과 바리케이드까지 꼼꼼히 쳐 놓는다. 발길을 돌려 오늘은 어디로 가야 하나 헤매는 마음이 무겁다.  

그나마 도착한 공원에서는 개똥을 치우지 않는 견주가 많으니 개는 무조건 나가라고도 하고,

TV에서 보니 큰 개는 사람을 문다며 무조건 입마개를 하란다.   

길을 가다가도 통행에 방해된다고 차도 쪽으로 내몰게 하더니, 

최근에는 벤치에 개를 올려놓는 것이 파렴치하고 몰상식한 행동으로 여겨진다고 한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성급한 일반화를 하며 팩트도 모르는 채로- 그저 자신의 생각이 진리이자 상식인 듯, 길 가던 행인들의 일상에 침범하여 '잠정적 골칫덩이'로 만든다. 평범한 개는 공격성 짙은 문제견이 되고, 평범한 견주는 개념 없는 인간이 되기도 한다.  


또, 자꾸만_ 다윈과 내가 좋아하던 자연이 사라져 간다. 

고백하자면, 우리 또한 다윈을 벤치에 올려놓은 적이 있다. 전 날 폭우로 진흙 바닥이 되었을 때, 물컹한 공원 땅을 피해 무더위를 피하려고 함께 벤치에 앉았다. 일어나서는 다윈이 앉은자리를 물티슈로 닦았다. 단지 앉혔다는 행위로 인해 우리는 예의가 없고, 왜곡된 사랑을 하는 사람이 되는 걸까. 공공시설을 훼손하지 않고 깨끗하게 사용해야 한다는 규범을 어긴 것일까?   

공존의 여유, 관용을 보여주세요.   


'사람이 먼저냐, 개가 먼저냐'는 다분히 감정적인 기적의 논리로는_ 문제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없다. 

범죄가 일어났다고 내 옆을 지나가는 모든 인간이 범죄자일 수는 없다. 일어난 결과를 보자, 그리고 원인을 파악하자. 감정적 치우침 없는 사실과 논리로서 타인을 설득할 수 있다면, 그때가 돼서 욕을 하고 비난해도 늦지 않다. 


이 위대한 인류가 미개하고 열등하다는 생명보다 더 야만적이라 느껴질 때가 있다. 

지구 상에서 '공생'을 모르고 죽이려 하는 것은 인간뿐이다. 

    


"반려동물 보유세 내라고 하면 좋겠어요. 죄지은 것도 아닌데, 산책할 때마다 이런 취급을 왜 받아야 해요?!" 


"세금도 내고, 의무도 다하면 권리는 보장해주나요? 공원에 편히 냄새 맡을 수 있는 풀밭 자리 조금이라도 내준다면 좋겠네요."  


"반려견 키울 자격 테스트를 하든, 자격증을 만들든 좋다고요. 제대로 교육할 수 있는 사람만 키워야지, 아닌 사람들 때문에 무슨 일만 생기면 무조건 다 같이 욕먹잖아요."  

   

모든 보호자의 편을 들 수는 없다. 흥분해서 왕왕대는 개를 풀어놓고 자기 갈 길 가는 게 산책이라 믿는 견주도 있고, 길거리에 쓰레기도 막 버리는데 개똥쯤은 비료라며 노룩 패스하는 사람도 있다. 컨트롤도 못하는 개에게 자동 리드줄을 매달고는, 본인은 핸드폰 통화에 매달려 지나가던 사람이 물리기도 한다. 귀여워서 키웠더니 금방 귀찮아 하는 인간도 부지기수다. 


그런 의미에서 반려동물 보유세든, 견주의 반려동물 능력 시험이든 교육 의무화든_ 모두 찬성한다. 

의무를 다하겠다, 기꺼운 마음으로. 

대신 권리도 달라.


사람들아! 우리 함께 살아요, 우리가 맞출게요.


조금만 관용을 베풀어 달라.  

한 공간에 있는 다른 생명을 보는 순간 싸잡아 학살하려 하지 말고 더불어 숨 쉬어 보자.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는 자신만의 삶의 주체다. 동물도 '생명권'이라는 도덕적 고려의 대상이고, 실존하는 도덕적 가치를 갖는다. 

인간 또한 영겁의 세월에서, 광활한 우주에서 작은 하루살이 세입자일 뿐인데- 

다른 생명, 다른 사람이 어떤 모양인지가 뭐 그리 핏대를 세울 일인가. 

직접적 피해를 주었다면 말해야 한다. 

하지만 단지 꼴 보기 싫고 더러운 것 같고_ 그저 무섭고, 어쨌든 이래저래 싫다면_ 지나쳐 가라. 

당신의 곁에 두지 말라. 그것을 내뱉고 표출하면서 당신의 감정과 에너지를 상하게 하지 말자. 



다윈을 만나기 전, 남편과 내가 본 눈부시게 행복한 개의 미소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단지 좋은 예만 본 것 뿐일까. 우리가 여행했던 나라들의 개에게선 여유가, 개를 대하는 사람들에게선 애정이 느껴졌다. 


함께 산을 오르고, 공원을 달리기도 하고- 

같이 버스를 타거나 기차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여름철엔 더위 먹지 말라며 오솔길 곳곳의 물그릇 보시도 하고, 

신에게 공양 들이는 음식을 배고픈 개가 먹도록 베풀기도 한다.   

    

사람보다 개가 먼저여서가 아니다, 비정상적인 인격화나 삐뚤어진 사랑도 아니다. 

우리가 도와줄 수 있는 생명, 함께 살아갈 생명에게 베풀 수 있는 성숙하고 관대한 배려다. 


반려견과 학교도 함께 가고, 반려견 여권을 만들면 유럽 어디든 여행할 수 있다. 오래된 유적지도 함께 산책할 수 있단다. 무조건적인 금지와 분리가 답일까. / 사진 출처 : 네이버


우리는 우리의 개도 그렇게 웃게 할 수 있을 거라 자부했다. 

많이 공부하고, 함께 배웠고, 노력을 계속하고 있으므로. 

하지만 우리만의 노력으로는 안 되는 것이 많다는 걸 느낀다. 

동물을 위하는 것이 인간을 무시하는 일이 아님에도_ 단순한 이분법으로 무조건 골칫거리 대하듯, 안 된다는 말로 금지만 한다. 

 

정말 '반려'동물이 맞는가. 아직까지도 우리는 동물을 '애완'하는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가. 

누가 본인의 짝을 이렇게 대하나. 

누가 본인의 짝을 그런 대접을 받도록 하나. 

키우지 말고 함께 살자. 

동물과 인간은 서로를 자라게 한다. 


의무를 다해야 한다. 다 하겠다. 

그러니 권리를 달라. 

아니 적어도, 합당한 지식과 논리 없는 그 텅 빈 시선을 거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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