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조 도토리묵 같아요.

by 담유작가

아직 그럴 나이는 아니지만, 이제 마냥 젊지도 않다.

그래서 일까. 요즘 부쩍 노후와 죽음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나에게 ‘쉼’이 필요하다고 느낀 것도, 아이러니하게 그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풍족한 노후를 위해 앞으로 20년은 더 열심히 살아야겠지만,

이런 스트레스를 끌어안고 일하다 보면, 마지막이 너무 고단할 것 같았다.


나는 ‘편안하게 명을 다해 눈을 감는 죽음’을 꿈꾼다.

병실에서 고통에 뒤척이다 가고 싶진 않다.

그래서 쉼을 택했다.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서.

죽음조차 편안하기를 바라는, 그런 마음에서.


이런 우울한 생각들이 잦아진 이유는

아마도 올해 들어 유난히 ‘노화’라는 걸 실감하고 있어서다.

갑작스런 시력 저하, 늘어가는 주름, 쳐진 눈가,

그리고 염색 주기가 점점 짧아지는 내 새치 머리.


서른아홉부터 새치가 눈에 띄기 시작하더니, 작년까지만 해도 두 달은 버티던 염색이 이제 한 달도 못 버티게 되었다.

염색을 한 지 보름이면, 머리 위에 반가운 듯 흰머리가 인사한다.

이젠 ‘새치’가 아니라 그냥 ‘흰머리’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뿌리 염색 한 번에 4만원을 지불하자니, 은근히 아깝다.

그리하여 찾게 된 곳이 바로 ‘염색방’.

동네 맘카페에서 정보를 얻었고, 가격은 단돈 2만원.

‘셀프 드라이’쯤은 감수할 수 있다.


염색방에 가면 내가 제일 젊다.

대부분 할머니들이 머리를 물들이며 담소를 나누고 계신다.

좌석이 협소해 염색약을 바르고 나면 바로 소파로 이동해 자리를 비워줘야 하는 시스템.

그 좁고 복작한 공간이 마치 사랑방 같다.


“왜 이렇게 자주 와요? 두 달은 버텨보지.”


원장님이 핀잔처럼 농담을 건네시고, 옆자리 할머님은 내 머리를 힐끔 보며 한마디 하신다.


“흰머리가 하나도 없는데 여길 와요?”


원장님이 웃으며 덧붙이신다.


“검은 머리가 싫어서 갈색으로 맞춘대요.”


웃고 있지만, 나는 속으로 중얼거린다.

‘제 눈엔 선명한데요…’


염색을 마치고 친한 언니와 차를 마셨다.

나도 모르게 툭, 이런 말을 내뱉었다.


“언니, 나 요즘 건조 도토리묵 같아요.”


물에 불리지 않으면 도무지 먹을 수 없는 바짝 마른 도토리묵.

지금 내 머리와 마음이 그렇다.

한껏 쪼그라들고, 말라붙은 기분.


얼마 전 류귀복 작가님의 북토크에 갔을 때, 작가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들은 남들의 힘든 얘기를 보고 싶어하지 않아요.”


나도 그렇다.

그런데도 자꾸 이렇게 힘든 이야기를 쏟아내는 나,

나는 구제불능일까.


누군가 나를 물속에 퐁당 넣어, 통통하게 불려줬으면.

나도 다시 말랑해지고 싶다.

말랑한 마음으로, 다시 살아가고 싶다.


#사십대의기분

#노화와감정

#쉼이필요해

#새치염색일기

#건조도토리묵

KakaoTalk_20250709_194929051.png


이전 02화출구를 재는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