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다는 말조차 바쁘게 하는 나에게
“어렸을 때 가난하게 살았어?”
일을 놓으려 하면서도
온갖 걱정에 전전긍긍하는 내게 한 친구가 툭 던진 말이다.
‘그런가?’
지금의 기준에서 보자면, 나는 분명 가난하게 자랐다.
어릴 땐 가난을 낭만처럼 느낄 수 있도록
부모님이 애써 주셨던 덕에 체감은 크지 않았지만,
지나고 보니 그랬다.
이를 테면, 에어컨은 꿈도 꾸지 못했던 어느 해 여름.
우리 가족은 수건을 물에 적셔 냉동실에 꽁꽁 얼려두었다가
하나씩 꺼내 안고 잠을 청하곤 했다.
그래야만 버틸 수 있던 열대야였다.
그런데 그 시절은 ‘지지리 궁상’이라기보다
온 가족이 낄낄대며 웃었던,
조금 불편했지만 재미있던 시절로 내게 남아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난의 기억’은 내 안에 지독하게 들러붙어 있다.
거기에 ‘K장녀’의 책임감까지 더해지니,
나는 나를 끊임없이 갉아먹는다.
엄마가 늘 자랑스러워하시는 ‘대대로 동안 집안’의 유전자는
내 대에서 끝날 판이다.
걱정이 많으면, 늙을 수 밖에.
예전, 개그맨 박수홍이 부른 노래처럼
나는 ‘가난이 무섭다.’
그리고 ‘가난의 대물림’은 더 무섭다.
그래서일까.
나는 이 쉼표를 길게 이어가진 못할 것 같다.
남편이 벌어다 주니 굶지는 않겠지만,
‘풍족하지 않음’이 곧 가난의 시작일까 봐 겁이 난다.
애써 ‘괜찮다’고 다독여도
가난의 기억은 자꾸 고개를 든다.
오래 쉬지는 못하겠지.
쉰다는 말조차 바쁘게 하는 나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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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과안정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