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나의 고찰과 생각_
1. 듣는 것에 대한 고찰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내가 느끼는 것이지만, 우리는 지금, 듣기의 세계에 있다고 생각한다. 길거리만 가도, 이어폰을 끼고 걷는 사람이 널려있고, 여기저기 가게에서는 음악들이 나오며, 방송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런 음악을 들을 때마다 생각한 것이 있다. 우리가 음악을 들으며 놓치고 있는 게 있는 것 같다고, 그게 뭘까? 고민해 보게 되었다. 오늘은 내가 이 궁금증에 대해 생각해 본 것에 대한 나만의 대답을 해보려고 한다.
듣는 것은 텅 빈 마음
나는 늘, 아침에 아버지 차를 타고 등교를 할 때마다 음악을 듣고 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해서 다운된 기분을 업 시키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음악을 들으며 가기 시작했을 때부터 전과는 달라진 것이 생겼다. 이전까지는 라디오를 들으며 아버지와 함께 이야기하면서 등교를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내 귀에는 음악소리 말고는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렇게 우리는 소리를 듣지만 듣고 싶은 소리만 듣는다. 다른 사람의 마음이 담긴 말이나 생각을 우리는 더 이상 듣지 않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듣는 것은 그저 특정한 말과 그 특정한 말(ex) 시, 음악등)에 담긴 이야기와 감동, 서사일 뿐이다. 하지만 그렇게 들어서 남는 것은 무엇일까? 나의 마음이 당장 위로를 얻었다. 내가 듣고 싶은 말만 들어서, 그러나 그러면서 놓치는 것들이 생겨버렸다. 그리고 그 놓친 것들에 대한 후회를 하고 또다시 마음이 아파온다. 그리고 또 그 마음 때문에 현실을 피하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그게 반복되면 나는 어느새 비어버린다. 그리고 그 텅 빈 마음에 또 소리를 밀어 넣는다. 소리를 넣을 공간은 없고 소리는 흘러 지나가버리게 된다. 그게 아무리 마음이 담긴 좋은 소리라 할지라도 어느 순간 텅 빈 마음이 담긴 소리가 되어있다. 즉, 누가 어떻게 말을 하든, 의미 없는 소리가 되어간다는 거다. 텅 빈 마음이 되어간다는 거다.
고통의 소리
그런 텅 빈 마음에서는 어느 순간부터 고통의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눈치채지 못하지만, 우리의 몸은 정신은 그 소리를 듣기 시작한다. 마치 허공을 가르는 듯한 소리를 말이다. 그리고 우린 지쳐버린다. 살기가 싫어지고, 나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 남들은 저렇게나 빛나고 있고 자신의 자리에서 열심히 하고 있는데 나는? 과 같은 그런 소리를 하게 되고 듣게 된다. 고통의 소리가. 실제로 말이 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소리에 베이고 또 베이고 또 베이기 시작한다. 아프다고 소리치는 소리는 그 소리에 묻혀서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는 듯 한 느낌이 들고, 점점 더 그 소리는 심해지기 시작한다. 그 이후부터 그 소리는 열등감에 사로잡히고는 이렇게 외친다. 죽어, 죽여, 죽어, 죽여, 죽어, 죽여라고 그리고 그때부터, 난 나와 남 모두를 아프게 하기 시작한다. 고통의 소리가 완성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때 생각한다. 진짜 이제 어떡하지? 난 어떻게 살아야 하지.
듣는 것은 사랑
그때 우리는 사랑을 들을 수 있다. 그렇지 못한다면, 결국 끔찍한 소리로 이어질 수도 있지만, 그렇기에 우리는 사랑을 들려주고 들어야 한다. 그때 우리에게 들리는 사랑이 바로, 특정한 말이다. 아까 말했던 특정한 말과 똑같다. 내가 듣고 싶은 소리, 내가 듣고 싶은 말이다. 그때 우리는 나만의 세계와 나만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되어갈 때쯤 사랑은 특정한 말에만 국한되지 않기 시작한다. 이전과 같이 특정한 기분 좋을 만한 소리만을 해 내가 허공을 휘젓게만 했다면, 이젠 내가 파도를 헤쳐나갈 자신감과 용기를 주고 있는 것이다. 아까와는 다르게 얻은 위로를 통해 한 번 더 나아가자고 하고 한 번 더 해내고자 한다. 그런데 왜 아까 하곤 우리의 행동이 달라져 버린 걸까?
다르게 들리는 소리
이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리가 성장했을 수도 있고, 놓쳐버린 소리가 있었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우리가 그 소리의 중요함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노래나 책이 말하는 소리는 늘 같았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소리를 늘 들어왔기에 흔한 소리로 치부하고, 허무한 소리로 치부해 버리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부모님이 우리에게 하는 잔소리나, 사랑한다라는 말이 있다고 치자, 잔소리에 담긴 것은 본질적으로 뭘까? 사랑이다. 우리가 힘들어지거나,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흔한 소리가 소중한 소리가 되니. 그것이 사랑으로 들리고 조언으로 들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사랑한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평소에는 그렇게 오글거리고 부끄러워서 잘 안 하게 되는데, 힘들 때 그런 소리를 들으면, 그 무엇보다도 강한 버팀목이 된다. 즉, 소리가 다르게 들리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럼 우리는 어떤 소리를 들어야 할까?
사랑을 들어야 한다
내 생각엔, 우리는 사랑을 들어야 한다. 나를 위하는 말과 행동에는 내가 깨닫지 못하는 사랑이, 소중함이 숨겨져 있다. 우리는 이것을 당연히 여기지만, 언젠가 사라질 소리처럼 여기고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를 위하는 말에만 숨어있는, 우리가 당연시하는 사랑이 숨어있는 걸까? 내 생각엔, 그것도 아니다. 나를 싫어하는 말, 질투하는 말에도 사랑이 담겨 있다 그리고 속이는 말(숨기는 말, 숨겨진 말)에도 말이다. 이게 웬 모순된 소리인가? 싶을 것이다. 나를 죽이려 드는 소리인데 도대체 왜? 싶을 것이다. 나를 공격하고 나를 없애려고 하는 말에는, 아무 맥락과 의미가 없는 말인 것 같지만, 나의 단점과 나의 부족한 점이 아주 잘 드러나있다. 너 글씨 진짜 못 쓴다라는 말이 있다고 하면, 여기서 나의 단점이 보인다. 뭘까? 글씨를 못 쓴다는 것이다. 즉, 내가 보완할 점을 알려준다는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이러한 말은 잘 받아들이면 우리에게는 좋은 양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진짜 무맥락으로 하는 인신공격 같은 것들에도 그렇다. 못생겼다. 이상하게 생겼다와 같은 말도, 똑같이 그러한 것이 있다. 속이는 말(숨기는 말, 숨겨진 말)도 마찬가지다. 누군가 내 험담을 깐다고 생각해 보자.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아... 내가 그렇게 못난 사람인가? 슬퍼 ㅠㅠ. 가 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아! 나한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는 거는구나가 된다. 선의의 거짓말? 그것도 마찬가지고. 물론 속이는 말을 한 의도가 자신을 위한 것인지, 내가 긍정적으로 생각한 의도에서 한 말이 맞는지는 모르지만 이러한 말과 행동들은 나를 좋은 의미로 사랑하든, 나쁜 의미로 사랑하든, 관심이 없다면 나올 수가 없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예외의 경우도 있을 것이고, 듣는 사람에게 상처가 된다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의 사랑에서 우러나온 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이 아닌, 진정한 의미의 사랑으로서의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럼, 진정한 의미의 사랑을 말하는 것은 무엇일까?
사랑을 말해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의미의 사랑은, 상대방에 대한 이해, 배려, 공감, 즉! 의견공유라는 것이다. 엥? 왠 갑자기 의견공유가 튀어나오냐?라고 할 수가 있는데, 모든 사랑은 소리에서부터 시작된다. 듣는 것, 말하는 것에서부터 말이다. 왜냐?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말해주지 않으면 그에 맞춰 이해, 배려, 공감을 해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의견과 생각을 말하는 것이 진짜! 중요하다. 그런데, 여기서 의견 공유라고 한다면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있다. 음... 내가 하는 평소토론처럼, 막 상대방 이기려고 들고 하면서 나의 편의를 위해, 나의 자존심, 나의 기분을 위해 내 의견을 강조하면 되는건가?라고, 그런데 내 생각엔, 그게 아니다! 두둥!!! 상대방과 함께 더 나아지려고 해야한다는 것이다. 아까도 말했듯, 진정한 의미의 사랑은 이해, 배려 공감이다. 그런데 내가 이겨서,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루는 것에 상대방에 대한 이해, 배려 공감이 있을까? 난 적어도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여기 집안일을 어떻게 분배해서 할까? 고민하는 한 부부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여기서 자존심을 세워서, 자신의 편의를 위해서, 난 이거 할 거야, 난 저거 안 해. 당신이 저거 다 해라고 해버리면... 이 말에는 이해, 배려, 공감이 있는가? 반대로, 당신은 내가 어떤 걸 했으면 좋겠어? 요리? 요리는 할 수는 있겠지만, 그랬을 때, 내가 요리를 한다면, 서로 쉴 시간이 생긴다는 장점도 있지만, 내가 요리를 배우고, 도전해봐야하는 단점도 있을 것 같은데? 하지만, 우리 함께 이러한 단점을 보완할 방법을 생각해보고 한 번 해보는게 어떨까? 예를 들어 같이 요리를 해보는 것은 어때? 역할 분담을 해서, 요리할 때 힘든 것을 나눠하고, 그동안 내가 틈틈히 요리를 배우는 방법은 어때? 라고 한다면? 어떤가?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조금은 담겨 있는 것 같지 않은가? 내가 어떤 행동을 하면 좋겠는지 묻고, 내가 이 행동을 했을 시 생길 수 있는 단점과 장점을 모두 말하고 서로 협력해 장점만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며, 서로 의견 공유를 한다. 즉, 사랑을 말하는 것은 무작정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비평을 하는 것으로, 상대방에게 궁금증을 남겨 계속 상대방이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게하고, 그 의견에 공감하며 장점을 말하면서도, 이것을 하면 상대방이 입을 수 있는 피해를 고려해 말하는 것. 그러나 그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는 방법등을 이야기할 때, 좀 더, 이해와 배려, 공감이 담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말뿐만이 아니라 행동으로도 그래야겠지만. ㅎㅎ....
이 글에 대한 마무리
내 생각에는 사랑은 호르몬 만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랑은, 듣는 것 말하는 것으로도 유지된다고 생각한다. 사랑을 듣는 것, 말하는 것 전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이 중요한만큼,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기도 하고 중요함을 놓치고 있을 수도 있고, 과소평가해 별 것 아니게 생각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하나 조금씩 해내려고 해야한다. 한 번에 사람이 바뀌지는 않을테니까.
* 여기서 부부를 예시로 들고 사랑, 사랑거려서 진짜 연애감정이나 그런 거로써의 사랑만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것뿐만이 아니라 나라를 생각하는 애국심, 부모와 자식간의 애정, 스승과 제자로써의 존중등, 여러가지 애가 들어가는 것을 모두 뜻한다.
이제 부터 늘 들어갈 코멘트이자 마음가짐.
그러나 나는 이런 쪽의 전문가도 아니고 철학가도 아닌지라 말이 횡설수설하고 이상할 수 있고 예시가 옳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도덕, 윤리적으로 반하는 말이 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이건 단지 한 명의 작은 학생, 단 한 명의 절대로 완벽할 수 없는 사람의 간단한 의견이기에, 소리와 의견이기에 잘못되었을 수 있다. 모순되었을 수 있다. 아까 말했던 사랑을 말하는 방식으로, 내가 쓴 글에 대해서 잘못된 점, 이상한 점, 모순된 점을 지적해주기를 바란다. 꼭 내가 말한 방식이 아니더라도, 아닌 것 같다던가, 이상하다던가 싶은 점들은 마음껏 비평해주기를 바란다. 그럼 그 말을 토대로 나의 부족한 점을 알고, 성장하고, 나에게 그런 부족함을 알게 해준 사람과 서로를 위하며 이야기 해보며 서로를 발전시켜나갈 수 있을테니까.
다음 고찰 예고
다음 고찰은 왜 내가 이러한 고찰을 하는가에 대한 고찰을 해보도록하겠다. 궁금하지 않은가? 한 작은 학생이 왜 이런 인생의 무거움을 생각해보게 되었는지? 그 이야기에 대해 다음에 해보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