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일기

_나의 고찰과 생각_

by 고영민

2. 고찰하는 것을 고찰하는 것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난 오늘도 생각을 한다. 후회를 한다, 만족을 한다, 기쁨을 느낀다, 슬픔을 느낀다. 이런저런 생각과 고찰을 하면서 여러 감정을 느낀다. 그리고 나는 그 후 한 발짝 떨어져 고찰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의문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러면 문득 드는 생각은 나는 이런 고찰을 왜 하고 있는 거지, 무슨 의미가 있는 거지?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것의 해답은 고찰 속에 있다. 왜 그런 것일까? 한 번 내 생각을 말해보겠다.


나에 대한 고찰

매일 공부해야지, 오늘은 꼭 운동할 거야, 게임을 조금 적게 해야겠다 등 나는 매일 아침 다짐을 한다. 그리고 그것을 실패하고 만다. 그리고 나는 나에 대한 고찰을 시작한다. 왜 실패한 거지?, 다짐과 약속을 왜 못 지킨 거야? 그리고 이번엔 말, 생각과 행동이 같도록 도전을 한다. 그러나 또 실패하고 만다. 또다시 나는 나에 대한 고찰을 시작한다. 계획이 부족했던 건가? 아니면 그냥 내가 게으른 건가? 그러한 나에 대한 고찰이 반복되다 보면 어느새 나는 나를 비판하는 고찰을 하고 있다. 아니 이걸 왜 못해, 끈기가 없는 거야? 아니면 뭐야? 이런 식으로 계속 반복하다 보면, 어느 새엔, 나는 나 자신에 대한 신뢰를 잃고 있었다. 그곳에는 나를 못 믿는 내가 있었다. 그러한 또 다른 불신의 내가 살기 시작했다. 난, 그러한 불신의 나를 없애야 할지, 품고 가야 할지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불신의 나

하지만 그러한 질문을 하는 순간 속에도 나는 계속 나를 잃기 시작했다. 내가 한 생각이 정말로 내가 한 것인가? 내가 한 결정이 내가 한 것인가. 결정을 해놓고도 하질 않으니, 나를 위한, 나에 관한 고찰들이 어느 순간, 나를 옥죄어 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한 순간에도 어떻게든 불신의 나를 나는 해결하려고 했다. 그러나 가시덤불에 박혀버린 몸이 제대로 움직일 리가 있나. 최악의 상황이 반복된다. 계속 실패하고 나를 믿지 못하게 되고, 또 그러한 상황에 괴로워하고 있고, 그러다 보니 점점 지쳐갔다. 나는 불신의 나와의 계속된 싸움에서 점점 죽어가고 있었다. 무채색의 자신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한 상황을 또 고찰하며 지쳐간다. 나아가려고 했지만 나아지지 않는 삶에 고통을 느껴버리게 되고 말았다. 그리고 난 이러한 상황의 해답을 찾아나가려고 했다. 내 마음을 다시 여러 색깔들로 칠해줄, 그러한 정답을 그러나 난. 찾지 못했다. 점점 다급해져만 간다. 조급해져 간다. 점점 색이 빠져가는 나를 보며, 안 된다고 소리치지만, 그러한 소리조차 소리의 색을 잃었다. 결국 나는 색을 잃어버렸다. 나만의 고찰을 나만의 생각을, 나만의 희망을, 난 이걸 어떻게 하면 다시 찾을 수 있을까?


해답과 정답은 바로 고찰 속에

그럼에도 나는 고찰을 멈추지 않았다. 고찰이 나에게 괴로움을 줌을 앎에도 계속, 계속. 아픔을 고찰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자 해답과 정답이 보였을까? 솔직히 말하자면, 아니다. 엥, 갑자기 웬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 해답과 정답이 고찰 속에 있었다면서요? 왜 반대로 말하시나요? 이에는 이유가 있다. 그 해답이 바로 나 자신을 비우는 고찰을 하는 것이었다. 안 되고, 내가 못한다라고 생각하며 초조해하는 고찰을 버리고, 나는 왜, 나를 비판하고 있었는가. 나는 왜 아픔을 느끼고 있었지? 나는 왜 초조해하고 있었을까? 하며 본질적인 아픔의 고찰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럼 그 순간 무너져 내려버린 고찰의 탑의 잔해 속에서 가장 첫 번째로 했던 고찰이 보인다. 난 학업 성취 때문에, 내 능력 때문에 그랬던 거였구나. 하고 그리곤 그럼, 난 이 무채색의 나를 초조해하는 생각을 할 때가 아니었네? 날 찾고자 하는 고찰을 할 때가 아니었네?를 깨닫는다. 나를 찾고 무채색의 나를 다시 빛나는 나로 되돌리려면 처음의 고찰에서의 문제점을 확실히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러려고 한다. 그러나, 앞에서도 계속해서 실패했던 것을 어떻게 성공하겠다는 말인가? 그것 때문에 계속 탑이 무너졌는데, 어떻게 하겠다는 말인가? 그것을 바로 다음 단락에 얘기해 보겠다.


일치화시키는 고찰

우리가 계속 고찰을 했던 이유가 무엇인가? 나 자신을 나의 생각과 말과 일치시키는 것이 고찰의 목적이었다. 그러한 일치화시키는 고찰이 완전히 이루어질까? 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 고찰과 행동은 어떤 순간에도 괴리가 생긴다. 완벽해보이는 사람일지라도, 가수도, 배우도, 학자도, 학생도, 어른도 모두가 고찰에 대한 괴리가 있다. 자신만의 고민이 있다. 그것을 아무리 없애려고 해도 없어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러한 괴리감에 초조해 해서는 안 되고, 그를 최대한 줄이려고 해야한다. 그러한 것에 대한 고민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같이 해결법을 찾으려고 해야한다. 끊임없이 더 나아질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모색해야한다. 물론 지칠 것이다. 힘들 것이다. 괴리감에 미친 듯이 구역질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괴리감에 의한 고통을 해결하는 방법은 일치화시키는 고찰말고는 없을지도 모른다. 해결책을 계속 고찰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을지도 모른다. 정말 모순된 상황이다. 고통을 없애는 방법이 계속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라니. 그러나 그렇게 감내하다보면 괴리감은 어느새, 웃으며 볼 수 있을 정도로 줄어들어 있다. 처음의 고찰이 해결되어 있을 것이다. 그와 동시에 불신의 나도 없어져있을 것이다. 즉, 더 나은 내가 되어있을 것이다라는 것이다. 즉, 안 좋은 고찰의 연쇄를 좋은 고찰의 연쇄로 끊어내는 것이다. 근데, 꼭 고통을 받아야하는가?


고찰이란 이런 것

아까도 말했듯, 우리가 감내해야하는 것이다. 고찰이란 이런 것이다. 나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일치화시키는 고찰을 마주한다. 한 번 실패했다고 멈추는 것이 아닌, 계속 처음 고찰의 본질을 다시 찾아가며 자세를 잃더라도 자세를 다시 바로 잡는다. 고찰이란 그런 것이다. 힘든 생각 안 좋은 생각이 떠올라도 이를 받아들이고 해결법을 찾고 다시 고찰하고 또 고찰하는 것. 그것이 고찰이다. 그래서 나는 그러한 고찰을 조금 이나마 이해하려고 하고 성장하기 위해 고찰을 한다. 마음일기를 쓴다. 오늘도 써내려간다.


이 글에 대한 마무리

제 생각은, 고찰은 분명 괴로운 때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때를 견디며 계속해서 일치시키는 일치화하는 고찰을 하다보면, 괴리감의 절벽이 줄어들어 언젠가는 가벼운 점프 만으로 넘나들어 목적지에 넘어들 수 있게 되겠지요. 그렇기에 포기하지 말고, 계속해서 나아가야한다,라는 것입니다. 제가 계속 마음일기를 쓰는 것 처럼요.


늘 들어가는 코멘트이자 마음가짐.

그러나 나는 이런 쪽의 전문가도 아니고 철학가도 아닌지라 말이 횡설수설하고 이상할 수 있고 예시가 옳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도덕, 윤리적으로 반하는 말이 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이건 단지 한 명의 작은 학생, 단 한 명의 절대로 완벽할 수 없는 사람의 간단한 의견이기에, 소리와 의견이기에 잘못되었을 수 있다. 모순되었을 수 있다. 아까 말했던 사랑을 말하는 방식으로, 내가 쓴 글에 대해서 잘못된 점, 이상한 점, 모순된 점을 지적해주기를 바란다. 꼭 내가 말한 방식이 아니더라도, 아닌 것 같다던가, 이상하다던가 싶은 점들은 마음껏 비평해주기를 바란다. 그럼 그 말을 토대로 나의 부족한 점을 알고, 성장하고, 나에게 그런 부족함을 알게 해준 사람과 서로를 위하며 이야기 해보며 서로를 발전시켜나갈 수 있을테니까.


추가 코멘트

이 글이 뭔가 딱딱하게 보여서 크게 위로가 되지 않을 수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러나, 제가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힘들어도 나아가다보면, 언젠가 빛이 보일 것이다. 행복이 보일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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