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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코코 Jul 22. 2024

'윌리엄 포크너'와 '코맥 매카시'에 관하여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와 '핏빛 자오선'을 반드시 읽어야 하는 이유

나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문학작가를 묻는다면, 나는 서슴없이 윌리엄 포크너와 코맥 매카시를 말할 것이다. 내가 이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나도 이들처럼 진정으로 가치 있는 문학 작품을 쓰면서 나머지 인생을 살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러나 아직은 나에게는 그런 용기가 부족하다. 작가로서 이들의 출발과 삶의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또한 윌리엄 포크너와 코맥 매카시가 쓴 책들을 읽어 내려가면, "이런 글들을 쓰는 당사자는 과연 어떤 마음가짐으로 이렇게 험난하고 처절한 내용을 써야만 할까?"라는 의문이 계속 들었다.


나는 이미 돌아가신 작가 중에서 가장 존경하는 분을 꼽으라면 윌리엄 포크너, 아직 살아있는 작가 중에서 가장 존경하는 분을 꼽으라면 코맥 매카시를 마음속에 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코맥 매카시 작가님이 2023년 6월 13일에 돌아가셨다. 나는 그래서 현재 살아 있는 분 중에서 다시 가장 존경하는 작가님을 다시 선정해야만 했다. 그분은 당연히 '리처드 포드' 작가님이다. '리처드 포드' 작가님은 현재 살아 있는 영어권 최고의 작가인데, 그가 쓴 '캐나다'를 읽고 나서 나는 여러 날을 슬픔 속에서 지냈다. '캐나다' 작품에 너무 몰입되어 나는 며칠 동안 그 작품의 내용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물론 그가 쓴 '스포츠라이터'와 '독립기념일'도 매력적인 작품이지만 내 생각에서는 '캐나다'만큼 의미 있고 슬픈 소설은 아니다. 내가 리처드 포드를 사랑하게 된 이유는 정확히 '캐나다'를 읽은 이후부터라고 말할 수 있다. 다시 기회가 되면 리처드 포드에 관하여는 다음에 더 말하기로 하겠다. 그런데 추가로 한 명 더 존경하는 작가를 선정하라면 나는 당연히 힐러리 맨텔을 말하고 싶다. 그런데 힐러리 맨텔도 지난 2022년 9월 22일에 아쉽게 돌아가셨다. 물론 토머스 핀천, 돈 드릴로, 필립 로스 등의 작가들도 사랑하지만, 가장 진정으로 좋아하는 순위를 매겨보라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윌리엄 포크너와 코맥 매카시를 거론하고 싶다.


내가 윌리엄 포크너를 사랑하게 된 이유는 그의 작품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를 읽고 나서부터 그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처음 윌리엄 포크너의 작품 '음향과 분노'를 읽고 나서, "어떻게 이런 방식으로 소설을 쓸 수도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에 사로잡혔다. 물론 2번을 읽고 나서 이 작품이 대단하다는 사실을 곧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이 분은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글을 쓰는 모더니즘 작가이다. 그렇다고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나 '허먼 멜빌의 모비딕'처럼 심하게 난해하지는 않다. 이것이 윌리엄 포크너의 강점이다. 어쩌면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쓴 작가 중에서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작품을 쓰는 작가이다. 윌리엄 포크너에 이어서 '버지니아 울프'도 의식의 흐름 기법을 비교적 읽기 쉽게 글을 쓰는 모더니즘 작가라고 말할 수 있다. 이처럼 윌리엄 포크너는 뭐라고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매력적인 방법으로 작품을 썼다. 그런데 하나 같이 모두 작품이 우울하고 무겁다. 그가 그린 미국의 실상이 과거에 바로 그랬던 것이다. 윌리엄 포크너는 오늘날 미국이 형성되기 전의 어두운 시절을 힘겨운 여정처럼 자세히 스케치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완성한다. 그는 '압살롬 압살롬! 과 팔월의 빛'을 통해서 점점 더 우울의 극치를 그렸고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에서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슬픔의 심연과 험로를 나타내고 있다. 여기서 해럴드 블룸과 나의 생각이 약간 다른데, 해럴드 블룸은 '팔월의 빛'을, 나는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를 윌리엄 포크너의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하고 있다. 한 편으로 윌리엄 포크너가 써 내려간 책의 문장이 다소 어렵기에 우리의 번역자들이 정말 고생을 많이 했을 것으로 예상한다. 그의 작품 '음향과 분노'에서 번역한 분이 이런 사실을 실제로 토로하기도 하였다.

 

윌리엄 포크너의 삶은 결코 여유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는 상당 기간 경제적으로 곤궁하였다. 좀 나아지다가도 다시 어려움이 계속되었다. 그는 이런 모든 난관을 이겨내고 결국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위에 거론한 그의 작품인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는 각기 다른 등장인물이 이야기의 한 부분만을 전달하도록 하여 내용을 전개하는데, 이런 방식으로 쓴 글이 독자들에게는 어떻게 의미가 전달되는지를 이 책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은 미국 남부의 1900년 내외 시기이며 아직 덜 발전했던 시대에, 엄마의 죽음 앞에서 한 가족이 겪는 복잡한 정서와 혼란스러운 상태를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엄마의 주검을 두고 가족 구성원들이 어떻게 이처럼 답답하고 난감할 수 있는지, 작품을 읽으면서 가족겪는 여러 안타까움에 사정없이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내가 위에서 말한 '리처드 포드의 캐나다'는 좀 세월이 지나서 미국이 한창 경제적으로 성장하던 시기에 한 가족의 갑작스러운 고난을 그리고 있다면,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는 미국이 아직 미개한 시기에 한 가족이 겪어야만 하는 이상하고 우울한 이야기를 독특한 기법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 소설은 실로 정말 대단한 윌리엄 포크너의 문학 작품이다. 나는 이 작품을 대하고 나서 윌리엄 포크너를 미국에서 가장 뛰어난 작가로 내 마음속 깊이 새기고 있었다. 한 작가가 어떻게 이런 대단한 작품을 쓸 수 있는지 지금도 깊이 존경하는 마음을 도저히 감출 수 없다. 해럴드 블룸도 이 작품을 여러 방식을 통하여 찬사를 던지고 있다.


나는 코맥 매카시가 허먼 멜빌은 물론이고 윌리엄 포크너에게서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고 확신하고 있다.  윌리엄 포크너가 한 가정에서 벌어지는 슬픔과 어두운 과정을 그렸다면, 코맥 매카시는 더 넓게 한 시대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그리는 작가이다. 그의 여러 작품 중에서 유명한 것은 '로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모두 다 예쁜 말들, 핏빛 자오선' 등이다. 모두 우울하고 살벌하고 너무 거칠어서 마치 죽음의 황무지 길 위에 있는 느낌이다. 나는 이 중에서 '핏빛 자오선'을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내 마음속에 선정하였다. 해럴드 블룸도 이 작품이 미국에서 보기 드문 대단한 작품으로 평가하고 있다. 한 작가가 이토록 무섭고 험난한 여정을 이처럼 강렬하고 난해하게 그릴 수 있는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핏빛 자오선'은 마치 죽음의 사자가 피비린내 나는 황야를 헤매고 다니는 듯한 상황을 바탕으로 거친 시를 쓴 느낌을 준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소설이 아니라 마치 거대하고 황량한 한 편의 길고 긴 시를 읽는 심정이고 실제로 이 작품은 죽음의 벌판을 배경으로 장문의 시를 써 내려간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충격과 감동을 선사한다. 미국이 아직 정상적인 국가로 형성되기 전의 가혹했던 상황을, 험악하고 치열했던 역사를, 매우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조차 없는 그림들이 여기에 그려져 있다. 내가 지닌 단어들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스케일도 크고 대단한 작품이다. 나는 이 소설을 읽고 미국의 한 작가가 이렇게 엄청난 작품을 쓸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나도 코맥 매카시처럼 문학 작품을 쓰고 싶다는 충동으로 내내 가슴이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꼈다. 그는 거의 10년에 한 편 정도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엄청난 집념의 소유자였다.


핏빛 자오선은 타임지가 뽑은 100대 영문 소설에 선정되었다. 반면에 이 100대 소설에 허먼 멜빌의 모비딕은 선정되지 못했다. 이 정도로 '핏빛 자오선'은 영문 소설 중에서 최고의 작품이다. 코맥 매카시는 젊은 시절부터 평생 소설만 쓰면서 살고 싶다는 충동이 너무 강한 나머지 첫 결혼한 아내로부터 신혼 시기에 버림받고, 우선 먹고살기 위하여 내키지 않는 자동차 정비공으로 어렵게 살면서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 또한 그가 한 참 뒤에 쓴 '로드'는 그의 실력을 여실히 보여주는 수작이다. 많은 사람이 이 '로드'를 코맥 매카시의 작품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인정하기도 한다. 그가 쓴 작품은 대부분 너무 훌륭하여 순위를 매기기가 정말 어렵다. 물론 나도 그의 작품 중에 '로드와 핏빛 자오선'을 가장 좋아한다.


윌리엄 포크너와 코맥 매카시, 미국의 현대 문학에서 바로 이 2명의 작가를 최고라고 나는 마음속으로 결정 내렸다. 코맥 매카시는 은둔하는 작가로서 평생 동안 오직 작품에만 매달리면서 고귀하게 살았다. 그의 삶 자체가 마치 '로드와 핏빛 자오선'의 내용과도 같이 문학가로서 절절하게 살았다. 윌리엄 포크너는 후배 문학가에게 아무도 상상하지 못하던 소설의 새로운 기법을 알려주었다. 선구자적인 삶을 산 것이다. 그는 현재 미국 역사 전체에 걸쳐 가장 위대한 작가로 여겨지고 있다. 노벨 문학상 소감에서 "예술가로 사는 행위가 가장 가치 있는 직업이다."라는 말로 그는 문학작가로서 살아온 날들을 진정으로 가치 있는 삶이었다고 표현하였다. 내가 이 2명의 작가를 여기에 소개한 이유는, 내가 가장 존경하고 흠모하는 작가들이라는 사실을 글로 표현하고 싶었고 동시에 이 분들이 우리나라의 문학가와 문학가 지망생들에게는 문학가의 롤 모델로 삼을만하다는 사실을 알리려는 데 있다. 


윌리엄 포크너는 노벨 문학상 수상 연설문에서 "문학은 인간이 어떻게 극복하고 살아가는가를 가르친다."라고 말했다. 윌리엄 포크너와 코맥 매카시는 그들의 문학 작품을 통하여 우리에게 이런 소중한 영감을 던져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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