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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코코 Mar 19. 2024

나는 바다와 슬프게 헤어졌다

내가 어릴 때 살던 인천시 송림동은 서해 바닷가에 가까웠다. 지금은 그 넓은 바다가 모두 메워져서 많은 공장이 들어섰지만, 어린 시절의 근처 바다는 동네 개구쟁이들이 매일 찾는 곳이다. 내가 국민학교에 들어가기 전 여름철에 형은 친구들과 함께 바닷가에 가서 매일 놀았는데, 바다로 놀러 갈 때면 나를 항상 데리고 갔다. 집에는 아버지도 엄마도 모두 돈을 벌러 나가서 아무도 없었다.     


형은 우리가 이 동네로 이사 온 11살 무렵부터 친구들과 바다에 놀러 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너무 어리기도 해서 깊은 물에 들어갈 수 없었고 나보다 6살이 많은 형과 친구들이 바닷속에 뛰어 들어가 물장구를 치면서 소리 지르면서 정신없이 놀 때, 나는 언제나 얕은 물가에서 혼자 앉아 놀았다.      


어느 날엔가 손으로 물을 첨벙 대다가 나도 모르게 점점 바다 안으로 들어간 것 같았다. 나는 물이 발목만 찰 정도의 낮은 곳에 앉아있었는데, 어느샌가 물이 내 입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꼈고 머리까지 물에 잠겼다. 눈은 물속에서도 계속 떠 있어서 물 안을 볼 수 있었다. 처음 본 물속은 뿌옇지만 많은 것들이 보여서 신기하기만 했다. 그러다가 숨을 쉬기가 답답해서 얼른 일어나려는데 일어날 수가 없었고, 나는 겁이 나서 두 손으로 물 바닥을 짚으면서 계속 몸을 일으키려고 애썼지만 도저히 안 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물속에서 허우적거리게 된 것이다. 바로 그때 누군가가 나를 덥석 안아서 들어 올렸는데 형이 물 밖으로 꺼낸 것이다. 머리는 안 보이고 팔만 휘젓는 모습을 보는 순간 급히 달려와서 나를 구했다. 형은 친구들과 정신없이 노는 와중에도 물가에 혼자 앉아 있는 나를 자주 쳐다보면서 지킨 것이다. 물 밖으로 꺼내진 나는 물을 토해냈고 무서운 생각에 울기는 했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듯했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나는 바다가 무서워졌으며 다시는 바닷물 가까이에 가고 싶지 않았다.      


형은 동생이 죽을 뻔했었다고 생각했는지, 친구들과 놀기를 중단하고 훌쩍이는 나를 달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저녁에, 바다에서 있었던 사실을 부모님께 내가 말했는지 형이 말했는지 지금은 기억이 안 나지만, 물속에 빠졌던 얘기를 전해 들은 엄마에게 형은 많이 야단맞았고 그날 이후부터 나를 바다에 데리고 가지 않았다.


그런데 동네 바다는 결국 내 친구를 삼키고야 말았다. 어린 눈으로 바라본 동네 바다는 어느 날은 물로 가득 찬 끝없는 바다였다가, 다른 날에는 바닷물은 하나도 안 보이고 드 넓은 갯벌만 펼쳐 있었다. 국민학교 1학년 여름 방학의 무덥던 어느 날, 나는 동네 친구들과 여럿이 바다로 몰려갔다. 우리가 도착한 그날 바다는 물이 모두 빠지고 갯벌만이 보였다. 우리는 끝없이 펼쳐진 부드러운 갯벌 위를 돌아다니며, 고동이나 굴도 캐고 조개도 잡았다. 가장 재밌는 놀이는 경사진 갯벌을 찾아내서 온몸으로 미끄럼을 타는 일이었는데, 그날도 어김없이 학교 미끄럼틀보다 더 길게 경사진 곳을 찾아냈다. 위에서 아래쪽으로 미끄러져 내려가면 작은 물웅덩이로 쏙 들어갔다가, 물에서 일어나 걸어 나오면 친구들 몸에 달라붙어 있던 검은 개흙이 물에 씻겨져서 좋았다. 그날 친구들은 미끄럼을 타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곳에서 온종일 웃어대며 놀았다. 나는 물이 무서워서 갯벌에 들어가지 않고 친구들이 미끄럼 타는 장면을 바닷가에 앉아서 쳐다만 보았는데, 노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즐거웠다. 그런데 친구 한 명이 미끄러져 내려가 아래 물 웅덩이로 들어갔는데, 다시 올라오지 않았다. 우리는 모두 너무 놀라서 무서웠다. 같이 놀던 친구들이 어른들께 이 사실을 알렸다. 많은 사람이 바다로 몰려오고 경찰 아저씨들도 왔다. 갯벌에는 바닷물이 점점 들어차고 있었고 물에서 나오지 못한 친구 엄마는 바닷가에 털썩 주저앉아서 소리 내어 하염없이 울었다. 친구는 그렇게 바다에서 죽었다.


그날 저녁에 엄마는 친구가 불쌍하다고 눈물을 훔치면서 형과 나에게 바다에 가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때부터 우리는 바다에 가지 않고 동네 골목에서만 놀았고, 바다와 슬프게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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