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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뚱냥이 Aug 21. 2024

뚱냥똥냥1-어쩌다가 열 일곱 마리나 키우게 되었나요

사랑스러웠으나 지켜줄 수 없었던 첫 묘연,제제

뚱냥똥냥 1화


어쩌다 고양이를 열 일곱 마리나 키우게 되었나요?

 - 사랑스러웠으나 지켜줄 수 없었던 첫 묘연, 제제





우리 집은 다묘 가정이다.

작년 12월 5일 화요일에 새로 태어난 새끼냥이 4마리를 포함하면 총 열일곱 마리,

작년에 고양이 별로 여행을 떠난 네 마리까지 헤아리자면 총 21마리의 집사다.


우리 집에 살고 있는 고양이들에 대해 듣자면 한결 같이 하는 물음이 바로 이것이다.


"어쩌다가 고양이를 열 일곱 마리나 키우게 되었어?"


데려오기까지의 사정은 제각각이다. 유기묘, 파양묘 무료 분양할 수 있는 곳은 온오프에 넘쳐나고 그곳에 올라오는 글들이 전부 다 100% 진실은 아니라는 점을 개체수가 늘어나기 전까지는 미처 몰랐다. 처음에는 순진하게 올라오는 글을 믿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파양, 혹은 분양 글을 올리는 이들의 이야기가 중요하지 않아 졌다. 나이는 물론, 성별, 품종, 무엇 하나 맞는 게 없는 경우도 더러 있어서, 어느 순간부터인가 무슨 말인들 믿지 않게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파양의 뒷면에 무슨 사정이 있었든 대체 그게 뭐가 중요할까? 저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인간에 의해 버려졌고, 결국은 내 손을 잡게 되었다는 사실만이 내겐 중요한 걸.


그래서 파양 하게 된 사정 같을 걸 묻는 대신, 고양이를 데리러 갔을 때 사람들이 보이는 태도에 주목하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애정이 있는 사람들은 이름, 식성, 장난감, 호불호에 대한 정보를 내게 건네주고, 가끔은 사진이나 연락을 미안한 기색으로 부탁하곤 했다. 사전에 전혀 요구하지 않아도 아이들의 용품을 챙겨주는 분들도 더러는 계셨다.


하지만 떠날 아이들에 대한 어떠한 발언도 없이 짐짝처럼 아이들을 길바닥에서 건네고 바로 떠나 버리는 사람들도 꽤 많았다. 그렇게 데려온 아이들은 분양자에게 소식을 건네봐야 돌아오는 회신도 없어서, 내 쪽에서 소식을 전하는 일도 끊어졌다.


우리 집 장남이자, 내 영원한 첫째 아들인 달땡이의 경우는 노령묘로 마지막 무지개다리 건넨 다음까지 최초 분양자분과 소식을 주고받았다. 근 십이삼 년 동안 이어진 연락이었지만, 매번 소식을 전해드리면 기뻐하시고, 고마워하시는 모습을 보여주셔서 내쪽에서도 아이의 연락을 드리는 게 기뻤던 것 같다.


지금 소식을 전해드리는 분양자님은 총 4분 정도 되는 것 같다. 매일매일 연락은 못 드려도 두어 달의 한 번 정도씩은 꼭 사진이나 영상, 장문의 문자들을 드리려고 노력한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아이들과 부득이하게 헤어진 분들에겐 소식이 가뭄의 단비 같을 것 같기에.


 그래서 어쩌다가 열 마리가 넘는 고양이를 키우게 되었느냐 하면은, 그 이야기를 하자면, 먼저 내 최초의 고양이였던 제제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와야 할 것 같다.


내가 대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동아리로 문예 동호회 활동을 하다가 만난 지인 분 중에 러시안블루 고양이를 키우시던 분이 계셨다. 그분은 아마도 그 당시에는 흔하지 않았던 캣대디였던 것 같다. 임신묘를 구조하셨는지, 아니면 어미 잃은 길냥이 아가를 구하셨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2개월 차 길냥이를 분양한다고 하셨다. 살아있는 어린 고양이! 어릴 적부터 동물이 좋았던 나는 궁금증이 폭발하는 기분이었다. 새끼냥이라니. 그것도 가까이서 보고 어쩌면 만질 수 있을지도 모를 아기 고양이라니. 몹시 두근거렸다. 그래서 놀러 가도 되냐고 여쭤봤다. 평소에도 러시안블루 고양이를 보러 간혹 놀러 가곤 했던 터라 아기 고양이를 구경 가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거기서 발목 양발을 예쁘게 신고 있는 검은색 코숏 아기냥이 제제를 보았다. 손바닥 위에 올라오는 작고 귀여운 몸에 사랑이 많은 성격에 홀딱 반해서 엄마에게 전화로 졸라서 제제를 우리 집으로 데려왔다. 고양이는 키운 적 없었지만, 토끼도, 병아리도, 문조도 오래 키웠기 때문에 겁도 없이 만용을 부린 것 같다.


나는 어릴 때부터 동물이 너무 좋았다. 언제나 독립할 나이가 되면 동물과 함께 살고 싶다고 말하곤 했던 나. 스무 살, 갓 어른이 된 미성숙한 나이. 독립의 꿈을 꾸며 나는 내 첫 고양이 제제를 그렇게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은 채 데려왔다.


벌써 십 수년도 전의 일이다. 그 당시만 해도 고양이는 흔한 반려 동물은 아니었다. 동물 병원에서도 주력은 강아지였고, 햄스터, 토끼, 고슴도치, 고양이는 기타 소동물에 포함되어 있었다. 지금처럼 고양이 사료나 간식을 마트에서 쉽게 구입할 수도 없었다. 펫샵도 대형이 아니면 고양이도, 고양이 용품도 별반 없었다. 주말까지 하거나 늦게까지 하는 동물병원도 거의 없었기에, 제제를 돌보던 집에서 한 줌 되는 어린냥이 사료를 얻어왔다. 그 밤이 지나고 다음날 대형마트를 여러 군데 돌고, 동물병원을 돌아다니며 아기 냥이 용품을 하나씩 마련해 왔고, 크지 않은 내 방은 제제를 위한 용품들로 조금씩 채워졌다.


하지만 따스한 체온이 필요했던 아기냥이인 제제는 포근한 숨숨집을 마련해 주어도, 에버레스트 등반 같은 침대 올라타기를 해가며 내 어깨나 겨드랑이 사이에서 잠들려고 했다.


 지금이야 고양이들이 내 침대를 장악하거나, 내 품에서 잠드는 게 너무 당연하지만, 그때만 해도 나는 그게 좀 어색했다. 어쩌면 너무 작은 내 첫 고양이가 내 잠버릇에 다칠까 봐 걱정되었던 것 같기도 하다. 매번 힘들게 힘들게 올라왔을 내 아기 냥이를 그때마다 들어 올려서 숨숨집에 되돌려 넣어주었다.


어린 제제는 그게 많이 서운했으려나. 그래도 사랑 많았던 아기냥이는 여전히 나를 좋아했고, 사람을 좋아했다. 서툰 집사이며 어린 엄마였던 나는 내 어린 고양이만큼이나 내 생활이 중요했고, 어느 날 수업을 갔다 온 새에 사고가 벌어졌다.


네 살짜리 어렸던 내 막내 동생이 발만 하얀 제제를 씻겨주어야겠다고 세탁기에 넣어버린 일이. 다행히 세탁기를 돌리기 전에, 세제를 넣고 있는 차에 엄마가 발견하셔서 놀란 아기냥이를 욕실로 데려가 세제를 씻기고 말려주셨지만, 제제는 너무 놀라고 무서웠는지, 내가 돌아온 이후로도 밤새 굵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울고 있는 어린 냥이가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는 생각에 나도 무섭고, 울고 있는 아이에게 미안하고, 내가 없는 시간에 벌어질지도 모르는 무수히 많은 사고에 대한 염려로 나는 그 밤을 울고 있는 제제를 달래며 하얗게 지새웠다.


어린 동생은 아무것도 모르고 저지른 일이겠지만. 어린애가 있는 집에서, 특히 집을 지우는 시간이 제법 많은 마당에 제제가 이번 사고 같은 일 없이 안전하게 자랄 수 있으리라 장담할 수는 없었다. 나는 제제를 데리고 학교 근처로 독립할까도 고심했지만, 엄마는 둘째 동생 친구네 분양 보내자고 설득하셨다. 가까이 사는 동생 친구네니 사진을 받을 수도, 간혹 양해를 구해 보러 갈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지금이라면, 아마 끝까지 제제를 포기하지 않았을 테지만, 그때의 어리고 무책임했던 나는 며칠의 설득에 못 이기는 척 제제를 동생 친구네로 보내는데 결국 동의해 버렸다. 어쩔 수 없다고, 이게 더 제제를 위한 길이라고. 대부분의 파양자들이 하는 것과 똑같은 자기변호를 하면서.


다행히, 제제는 천운이 따랐는지, 분양된 집에서 무사히 잘 자라 성묘가 되었다. 하지만 몇 년 뒤에 우리 집이 그 동네에서 이사를 하게 되면서 동생과 동생의 친구도 멀어지면서 제제의 안부는 묻는 일은 드물어졌고, 결국은 연락이 끊어졌다.


그 일 때문이었을까. 대학가로 독립을 한 뒤로도 함부로 고양이를 키울 생각은 못했다. 그때처럼 여차하면 집을 구해 나갈 수 있을 만큼 경제력을 갖춘 뒤에야 내 고양이를 들일 수 있겠다고 생각이 바뀐 탓이었다. 비겁한 변명은 더 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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