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한일 양국의 진실한 관계는 어떻게 이루어질까요?
추상적인 질문에 대답하기 앞서서 위의 문장을 고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일”의 주체는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진실한”이라는 의미는 어떠한 상태를 상상하는가?
1. 국가 대 국가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보통 정부를 떠올립니다. 국민의 대표인 정치인들이 주체가 되는 어떠한 정치적 활동을 뜻하죠. 하지만 그들은 국민들의 권력을 임시적으로 맡은 집단으로, 언젠가는 또 다른 사람으로 교체됩니다. 그러나 수많은 시민들의 활동은 끊임없이 대를 이어 갑니다. 그렇기에 제가 말씀드리는 한일의 주체는 경제, 문화 등 어떠한 특정 주제로 활동하는 시민들이라고 생각합니다.
2. 주위에 진실한 관계가 있습니까? 그 관계를 곰곰이 생각해 보세요. 그/그녀와는 어떤 감정이 앞서고 평소에는 어떻게 대하나요? 생각하고 계시는 그 감정이 인간관계에서 중요하며, 더 긍정적인 관계로 발전하게 합니다. 수많은 시민들이 일본의 경제, 문화, 사람과 ’ 진실한 ‘ 교류를 한다면 지금보다는 더욱 깊은 관계로 나아갈 거라 생각합니다.
진실한 관계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신뢰는 시간의 축적 속에서 자라나며, 그 바탕에는 상대를 이해하려는 진심이 있습니다. 한일 관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정치가 바뀌어도, 세대가 달라져도, 서로를 향한 ‘믿음’이 있다면 그 관계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에드먼드 버크는 “국가는 단순한 계약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 그리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들 간의 계약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정치가 단기적 이해관계의 산물이 아니라, 세대 간의 신뢰와 도덕적 연속성 위에 세워져야 함을 뜻합니다. 저는 이 정신이 한 일 관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국회의 정치라는 협소한 틀을 넘어, 사회 속에서 신뢰를 쌓고 싶습니다. 정치가 흔들릴 때도 사회의 신뢰망이 살아 있다면, 그것이 곧 국가 간의 평화를 지탱하는 힘이 될 것입니다. 진실한 관계는 위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자라나는 유기체와 같습니다. 버크가 말한 “도덕적 상상력(moral imagination)”이 사회 속에서 살아 숨 쉴 때, 한일 양국은 비로소 서로를 이해하는 진정한 동반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