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 속에 담긴 사랑의 신호
“이야 이야 이야 (일본어 번역: 싫어 싫어 싫어)“
이제 아이가 한 살 반이 되었습니다. 누워서 젖병을 먹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밥도 잘 먹고 방안을 이리저리 뛰어다닙니다. 인간이 이렇게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존재인지 새삼 느끼게 됩니다. 이도 제법 나고, 다리의 힘도 점점 강해지면서 아이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이 늘어가는 것을 스스로 느끼고 있는 듯합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산책을 나가 유모차에 태우면 얌전히 앉아 있었는데, 이제는 유모차에서 내리려고 온 힘을 다해 울고 저항합니다. 그럴 때마다 도로 위가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내와 저는 철통 경비를 하며 아이가 직접 걸을 수 있도록 돕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이제 イヤイヤ期(떼쓰기 시기)가 왔구나” 하고, 아이의 성장에 새삼 놀라게 됩니다.
아이는 아직 말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웅얼거리거나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표현합니다. 아직 언어로 의사를 전달하지 못하는 아이에게 어른의 수준의 커뮤니케이션을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부모 역시 감정적인 존재이기에, 때로는 짜증이 나고 화가 날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정을 추스르고 돌아서면, 곧 미안한 마음이 밀려옵니다. 아이는 벌써 그 감정을 잊은 듯, 해맑게 웃으며 저를 바라봅니다. “싫어, 싫어” 하며 떼쓰는 아이를 볼 때마다 머리를 꼭 껴안아 주고 싶지만, 그보다 먼저 아이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아이는 아직 사회적 표현 수단이 풍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아이는 울고, 떼쓰고, 도로 위에 누우며 자신의 의사를 표현했습니다. 마치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시위를 하는 정치적 데모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모습 속에서 저는 아이가 진심으로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알려고 하는 저 자신의 애정을 느낍니다. 그리고 오늘도 육아로 고생하시는 모든 부모님들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아이는 그렇게 떼를 써도, 부모가 자신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이 신비로운 관계는 누군가에게 배워서 익힌 능력이 아니라는 점이 놀랍습니다. 애정이라는 감정은 인간 본성 중 하나라는 사실을, 저는 오늘도 아이를 통해 깊이 실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