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허기짐의 절정
오은영 박사가 전문 멘토로 함께하는 '금쪽같은 내 새끼' 프로그램의 사연들은 언제나 화제성이 짙다.
그중 내게 가장 인상 깊었던 사연은 부모의 이혼 후 엄마에게 마음을 닫은 남매가 출연하는 편이었다. 서로 눈만 마주쳐도 싸우고, 엄마에게 마구 화를 쏟아낸다. 심지어는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하는 욕설까지 내뱉는다. 가족이 다들 서로를 중재하며 괜찮은 듯 웃다가도, 도화선에 상처 주는 말로 불을 확 붙이기도 한다. 각자의 상처가 있는 채로 서로를 미워하는 듯 사랑하는 듯 위태위태하게 한 집에서 살아나간다.
이 사연이 인상 깊었던 것은, 내가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처음으로 번쩍 기시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연의 아이들이 나오면 예전엔 심각하게 인상을 찌푸리곤 했다. 자녀의 언어나 행동의 교정이 필요해 출연을 결심한 부모들이 대부분이었으니까. 어떻게 엄마한테 저런 말을 해, 어떻게 아빠한테 저렇게 해, 이런 생각이 대부분이었다. 아무리 금쪽같은 내 새끼라지만, 입을 틀어막게 되는 수준의 사연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이번에는 이 사연을 보며 마냥 내 이야기가 아닌 듯 놀라 하며 볼 수가 없었다. 부모에게 상처 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꺼내며, 끝내 부모를 울리고 만다. 웃으며 지낼 때도 있지만, 핀트가 어긋나는 포인트가 있으면 그 순간 바로 울컥하게 된다. 그러다 결국 날 이해해주지 못한다는 생각에 대화를 단절하게 되고, 속상함에 울며 밤을 지새운다. 어디선가 많이 본 패턴이었다. 굉장히 많이, 그리고 굉장히 익숙한.
그래, 그것은 내가 가족을 대하는 패턴과 정확히 일치했다. 물론 대화의 수위는 훨씬 낮았지만, 큰 틀로 보았을 때 감정의 양식이 놀랍게도 같은 방향이었다. 남매에게 내 모습이 겹쳐 보이고, 엄마에게 우리 부모가 겹쳐 보이고.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가 많아 섣불리 화목할 수 없는 사이.
우리 부모는 내가 우울증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그 과정에서 나는 부모에게 이해받지 못해 상처를 많이 받았고, 부모는 그런 나를 이해하지 못해 상처받았다. 그래서 그 상처를 잘 숨기고 있으면 같이 밥을 먹으며 얘기를 나누고 웃다가도, 상처가 건드려진 때는 날을 세우며 약한 부분만 골라 언행이 이루어지곤 했다.
그렇게 수저를 탁 내려놓으며 방에 들어가는 것이 다반사였다. 이런 얘기를 하는 것에 있어서 지긋지긋했다. 내가 이런 말을 안 해줬으면 좋겠다, 하는 것에 있어서 지켜지지 않는다는 사실보다 그 말이 그렇게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다는 좌절감이 더 컸다. 부모님은 우울증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계신 것 같았다. 그럴 수밖에. 두 분은 굉장히 평범하신 분들이셨고, 정신질환에 대해서는 그때 당시의 인식도 그리 좋지 못했다. 그래서 당연히 내가 약을 처방받고 싶어 했을 때(정신과에 정기적으로 다니고 싶어 했을 때)에도 난감한 표색으로 에둘러 거절하길 수백 번이었다. 내가 정신과에 다니고 싶어 할 때까지만 해도, '그런 곳은 미친 사람들이나 가는 곳'이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나도 어느 정도 이해한다.
하지만 내가 그만큼 내 치료에 절실함이 보인 것이 그렇게 소중한 것이라는 걸 부모님이 아시게 되는 건 나중의 일이었다. 현재는 치료의 의지도 사라진 지 아주 오래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엔 우울증의 심화가 내 주변의 중요한 사람들에게서 받은 좌절감과 실망감의 연속 때문이었다. 지금은 누구도 원망하고 싶지 않다. 부모는 내게 악감정을 품은 게 아니라, 날 걱정해서라는 것을 안다. 친구는 내 이야기에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 나이에 듣기엔 당황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는 것도 안다. 그렇기 때문에 괜찮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생각이 정리되고 나면 문득 이런 생각이 치고 올라온다.
그럼 내가 그때 받은 상처는?
내가 그들을 이제는 이해한다고 해서 용서를 할 수 있는 것일까. 이해와 용서의 개념은 다르다. 이해가 선순위이고, 후에 용서가 이루어진다. 그렇기에 용서라는 결과를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받아들이는 것일 수도 있겠다. 난 부모와 친구들을 이해한다. 그렇지만 용서하기에는 힘들다. 상처는 낫는 것이지, 없어지는 게 아니니까.
이 상처가 나을 때까지 참으로 많은 감정 굴곡을 견뎠더랬다. 그 과정에서 내가 가장 많이 느낀 감정은 아마 좌절감일 것이다. 좌절감이 쌓이고 쌓이고 쌓이고... 쌓이게 되면, 최종국면으로는 '자존감의 바닥'을 치게 된다. 그 바닥은 한 번 치게 되면 다시 올라오기까지 깊고 지속적인 애정이 있지 않으면 벗어나기가 힘들다. 힘든 수준이 아니라, 나 스스로 올라오려는 노력 자체를 포기하게 된다. 난 그저 쓰레기이고, 이 삶을 살아갈 의지가 없고, 이런 사람은 죽어야 하고. 사고가 그저 죽음으로 초점이 맞추어진 기계처럼 변모한다. 깊고 지속적인 애정만이 살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