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경우
죽고 사는 문제의 가치관 정도라면 누구라도 일치해야 마음이 편할 것이다. 하지만 그 외의 일상적인, 혹은 심각해질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면 가치관이 달라도 괜찮다…라고 받아들이기까지는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애정에 관한 정의, 관계에 대한 정의, 남녀 간의 인식, 가족의 영역, 취미나 하고픈 일에 대한 관심과 이해…
사소하게 가치관을 지닐 만한 일들은 많다.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더더욱. 그리고 그중에 이러한 얘기를 가장 많이 나누는 사람은, 매우 높은 확률로 부모다.
어렸을 땐 참 여러 일들로 좌절을 겪었더란다. 내가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한 얘기를 꺼냈을 때 부모는 거의 한 번도 시원하게 그러렴, 혹은 좋네!라는 반응을 해보인 적이 없었다. 대부분은 인상을 찡그리며 그건 좀 위험하지 않니, 라던가 그건 좀 다른 사람이 보기에 그렇지 않니, 라던가 왜 그런지 나는 잘 모르겠다, 라는 반응이었다.
일례로, 나는 아마도 가장 아름다울 나의 젊은 시절을 남기고파 포토그래퍼를 고용해 사진을 찍고 싶어 했다. 그냥 길을 걸어가며 포즈를 취하는 그런 나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랄까. 좋은 카메라로, 선선하게 바람이 부는 좋은 날씨에서, 좋은 표정을 짓는 내 모습은 내가 발 벗고 나서서 찍어야 나온다고 생각했다. 핸드폰 카메라로 나오는 감성이 아니라.
뭐 그냥 고작 이런 것들이다. 아마 부모는 자식이 낯선 사람과 연락을 해서 사진을 찍는다는 게 불안하셨던 것 같다. 내가 충분히 설명을 했는데도 불구하고(야외 촬영이고, 계속 연락할 거고, 사람이 많은 장소이고 등등…).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만 내가 이렇게 하고 싶은 일들이 생길 때마다 늘 시원찮은 기분은 참 난감하고도 답답했다.
비단 하고 싶은 일들에서만 막힌 것은 아니다. 아무래도 난 젊고, 부모는 상대적으로 나이가 들었다. 부모는 꽉 막히고 나는 쿨하고. 뭐 이런 말이 아니다. 단순히 살아온 시대에서 오는 차이가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죽고 살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면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길 문제들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그냥 그런가 보다’라는 마인드를 어렸을 때는 전혀 가지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모와 나를 동일시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부모는 영원한 나의 편, 내게 무한한 애정을 주는 존재, 나와 떨어질 수 없는 사람, 혈연이란 단어가 주는 결속력. 모든 것이 부모와 나를 한 군데로 칭칭 옭아맸다.
그래서 부모와 내 가치관이 같지 않으면 얼굴이 상당히 붉어질 정도로 당황했던 것이다.
‘왜 나와 동일하게 생각하지 않지?’
‘이건 내 생각이 맞지 않나?’
‘왜 내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는 거지?’
왜지? 왜? 머릿속에서 질문이 떠나질 않았다.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그리고 그들 안에서도 내가 그리 존재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이렇게 나올 수 없다고 생각했다. 뭔가 배신감이 드는 것도 같았다. 왜 날 이해해주지 못하지?
그리고 실제로 부모를 설득하려 애썼다. 내가 생각하는 논거는 이런 것이고, 부모가 생각하는 것에는 이러한 어폐가 있고, 내가 경험한 것에는 이런 것들이 존재하고…
지금 생각해보면 이 얼마나 쓸데없는 짓인지.
난 부모가 너무 소중해서 나와 다른 존재라는 것이라는 것을 쉽사리 인정하지 못했던 것 같다. 아니면 그냥 이기적이어서 날 이해해주지 못하는 것에 배신감을 느꼈거나.
부모는 엄연히 나와 다른 타인이다. 더 나아가자면 사실 남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내가 아닌 타인은 남이다. 정말 그렇다. 남이 나와 다른 사고를 가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그것에 충격을 받거나 이해시키려 드는 것은 너무나 힘 빠지는 일이다. 그렇지 않은가?
서로 이해시키려 할 필요도 없고, 이해하려 할 필요도 없다. 생존의 문제가 아니라면 그저 저 사람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군, 하며 넘기는 것이 훨씬 편하다. 어렸을 때 나는 부모와 내가 독립적인 개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해 부정적인 감정을 참 많이 느꼈다.
이제라도 이걸 깨달은 것은 상당한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내 삶에 여유와 관용을 선물한 이 깨우침을 잊지 않도록 작성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