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할아버지께
명절에도 할머니 집에 가지 않은지 몇 년이 지났다. 그런데 드디어 이번 설에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뵈러 갔다. 이번 해부터 우리 가족이 멀리 떠나는 탓이다.
친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친할머니께서는 혼자 살고 계신다. 갔더니 할머니 혼자 이것저것 우리 가족이 온다고 다 차려주셨다. 부모님께 전해 들었는지 나보고 말도 좀 하고 씩씩하게 살고 가서도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해주셨다. 난 꾸역꾸역 밥을 먹으며 네, 하곤 미소 지었다. 할머니 앞에선 왠지 밥을 밀어 넣게 된다.
할머니 집을 떠날 때 할머니께서 서운하다고 우셨다. 아들이, 그리고 손녀와 며느리가 멀리 가는 것이 못내 아쉬우신 것이다. 그러나 내가 행복하다니까 괜찮다고 하셨다. 나이가 들면 본인의 안위보다 손아랫사람의 행복이 최우선인 걸까.
그다음은 외할머니 집에 갔다. 외할머니보다 외할아버지는 정말 오랜만에 뵙는 것이었다. 외할아버지는 어느새 많이 늙으셔서 정신이 오락가락하신다고 하셨다. 알츠하이머인 것 같다는 얘기도 나왔으니.
그렇게 만난 할아버지는 많이 살이 빠지셨다. 체구나 허리가 굽혀진 정도는 전과 비슷했지만, 눈에 띄는 건 살이 무척이나 빠지셔서 앙상해 보이셨다는 것이었다. 잘 드시긴 드신다고 들었고, 실제로 이번에 같이 식사를 해보니 못 드시는 편은 절대 아닌 것 같았다. 노인이 되어 소화 능력이 떨어진 것이 분명하다. 긴 다리에 살이 없고 힘이 없어 턱턱 걷지 못하시고 종종걸음으로 바삐 움직이셨다.
소파에 앉으신 할아버지 옆에 내가 앉고서, 할아버지는 줄곧 안방을 왔다 갔다 하셨다. 도무지 가만있질 못하셨다. 다시 돌아오신 할아버지에게는 계속 진한 가글의 향기와 분 냄새 같은 것이 났다. 아마 분 냄새가 강하게 나는 로션 같은 걸 바르신 것 같았다. 어찌나 강한지 들고 있던 세뱃돈 봉투로 더운 척 부채질을 하며 향을 날려 보내줘야 할 정도였다. 가글과 분 냄새로 본인의 체취를 가리려 했던 것일까. 냄새가 날까 봐 계속 왔다 갔다 하며 헹구고 바르고 하셨을 것이다...라고 추측이 드는 순간 심장이 무거워져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할아버지의 눈은 아이 같았다. 한 번도 할아버지에게 이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다. 할아버지는 항상 까칠하고, 어느 정도 독선적이었다. 그런 할아버지의 눈망울이 유해졌다. 입술이 꽉 깨물릴만큼 안타깝고, 안아드리고 싶었다. 왜 정신을 잃어가는 노인은 아이가 되어가야만 하는 걸까. 난 울지 않으려 애썼다. 그러나 할아버지께서 우셨다. 눈이 시뻘게지고 목소리가 떨리셨다. 더듬거리며 정확하지 않은 목소리로 무어라 말씀하시며 날 바라보며 웃으셨다. 참 아이 같은 미소였다. 내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이셨다. 가끔은 눈으로 대화하는 법도 알아야 한다. 입이 열리지 않을 땐 눈이 대화의 창구니까. 난 마지막으로 나오며 할아버지와 계속 눈을 마주쳤다. 갈 때까지 할아버지는 날 바라보셨다. 가고 나서 주룩주룩 눈물을 흘리진 않으실지 후회됐다. 안아드리고 나오고 싶었는데...
할머니께서는 온전히 혼자서 할아버지를 돌보기 때문에 힘들어하셨다. 가뜩이나 할아버지는 꽤나 까탈스러운 모양이셨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할아버지는 정정하셨는데, 그 모습을 나도 기억하고 있으니 할머니가 이해가 갔다.
그런데 할아버지의 지금 모습은… 안타깝기 그지없어 무어라 말할 수가 없었다. 얼마 전엔 이불에 대변도 가리지 못하셨다고 한다. 할머니도 불쌍하고 할아버지도 불쌍하고… 나이가 든다는 것은 왜 이리 비참한지. 돌보고 돌보아지는 굴레에 빠지는 것이다.
친할머니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그리고 돌아가신 친할아버지의 나를 향한 무한한 애정에 감사하며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