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왜 우리는 취미가 필요한가

일과 생존 중심의 삶에서 취미가 가지는 심리적 의미

by 노멀휴먼

우리는 언제부터 취미를 사치처럼 여기게 되었을까. 어릴 때만 해도 좋아하는 것이 분명했다. 축구를 하고, 만화를 보고, 노트를 채우며 무언가를 그리거나 만들었다. 그때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시간을 잊고 몰두했다.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질문이 바뀐다.

“그거 해서 뭐가 되는데?”

이 질문은 이상하게도 취미를 설명하기 어렵게 만든다. 취미는 원래 결과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데도, 우리는 점점 그것의 ‘쓸모’를 증명해야 하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취미를 말할 때도 조심스러워한다. 독서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자기계발이냐”고 묻고, 사진을 찍는다고 하면 “수익이 나냐”고 묻는다. 좋아하는 일이 어느새 생산성을 통과해야 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어쩌면 우리는 삶을 너무 오랫동안 ‘생존 모드’로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 삶은 언제부터 일 중심이 되었을까

학교를 다닐 때 우리는 시험을 위해 공부한다.

졸업하면 취업을 위해 준비한다.

취업을 하면 승진을 위해 일한다.

이 과정은 매우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문제는 그 사이에서 ‘나’라는 사람이 사라지기 쉽다는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면 시간이 빨리 가는지, 어떤 순간에 마음이 편안해지는지를 점점 잊어버린다.

직장인이 되면 하루의 대부분은 일에 쓰인다. 아침에 눈을 뜨면 출근을 준비하고, 하루의 에너지를 일에 쏟고, 집에 돌아오면 이미 지쳐 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몇 년이 지나간다.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 걸까.”

이 질문은 거창한 철학이 아니라 아주 현실적인 감정에서 시작된다.

삶이 계속 반복되는 느낌, 어딘가 비어 있는 느낌, 이유 없이 지치는 느낌. 많은 사람들이 이 감정을 ‘스트레스’라고 부르지만, 사실 그 안에는 다른 이유도 숨어 있다.

삶에 ‘나를 위한 시간’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 취미는 시간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회복하는 것이다

취미를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말한다.

“시간이 있어야 하지.”

맞는 말이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상한 점도 있다. 우리는 하루에 몇 시간씩 휴대폰을 보고, TV를 보고,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흘려보내기도 한다. 그 시간은 충분히 존재한다.

문제는 시간이 아니라 에너지다.

일만 하는 삶은 에너지를 회복할 공간을 만들지 않는다. 우리는 일을 하면서 에너지를 쓰고, 쉬는 시간에도 일에 대한 생각을 이어간다. 몸은 쉬고 있지만 머리는 계속 일하고 있는 셈이다.

취미는 이 흐름을 끊어 준다.

좋아하는 일을 할 때 사람의 뇌는 완전히 다른 상태가 된다. 일을 할 때 사용하는 ‘의무의 에너지’가 아니라 ‘흥미의 에너지’가 작동한다. 이때 우리는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과정에 몰입하게 된다. 시간은 빠르게 지나가고, 마음은 가벼워진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상태를 ‘몰입(flow)’이라고 부른다.

몰입 상태에 들어가면 사람은 스트레스를 잊고 자신이 하는 일 자체에 집중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에너지가 다시 채워진다.

그래서 취미는 단순한 여가가 아니다.

삶의 균형을 회복하는 장치에 가깝다.


# 취미가 없는 삶의 특징

취미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대부분의 대화가 일 이야기로 돌아간다.

누군가를 만나면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이어진다.

“요즘 회사 어때?”

“일은 괜찮아?”

“요즘 바쁘지?”

대화의 중심에는 항상 일이 있다. 일 외의 이야기가 잘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삶의 정체성도 일 중심으로 바뀐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가’로 대체된다.

문제는 일이 흔들릴 때다.

조직이 바뀌거나, 평가가 좋지 않거나, 예상하지 못한 변화가 생기면 삶 전체가 흔들리는 느낌을 받는다. 삶의 중심이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취미가 있는 사람은 조금 다르다.

일이 힘들어도 돌아갈 곳이 있다. 퇴근 후에 기타를 치거나,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거나, 운동을 할 수 있다. 그 시간은 일과는 전혀 다른 세계다.

이 작은 차이가 삶의 안정감을 크게 바꾼다.


#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의 심리적 의미

취미를 하는 사람을 보면 종종 이런 생각이 든다.

“저 사람은 여유가 있나 보다.”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바쁜 사람일수록 취미를 유지하려는 경우도 많다. 이유는 간단하다. 취미가 삶을 버티게 해주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때 ‘자기 자신’에 가까워진다.

일을 할 때 우리는 역할을 수행한다.

직원으로서, 상사로서, 부모로서,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이다. 이 역할들은 중요하지만 동시에 많은 에너지를 요구한다.

취미를 할 때는 다르다.

그 순간만큼은 역할이 아니라 ‘나’로 존재한다.

그래서 취미는 작지만 강력한 심리적 공간이 된다. 그곳에서는 평가도 없고 경쟁도 없다. 잘하지 않아도 괜찮고, 결과가 없어도 괜찮다. 단지 좋아한다는 이유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이 경험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너무 자주 ‘쓸모 있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 취미는 삶의 속도를 조절한다

현대의 삶은 빠르다.

일도 빠르고, 정보도 빠르고, 변화도 빠르다.

이 속도 속에서 사람들은 점점 더 지친다. 하지만 속도를 줄이는 방법을 잘 모른다. 쉬려고 해도 마음이 불안해지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시간을 낭비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취미는 삶의 속도를 자연스럽게 낮춘다.

예를 들어 사진을 찍는 사람은 풍경을 오래 바라본다. 글을 쓰는 사람은 생각을 정리하며 시간을 보낸다. 등산을 하는 사람은 천천히 걸으며 숨을 고른다.

이 활동들은 효율적인 행동이 아니다. 하지만 그 비효율 속에서 사람은 숨을 쉰다.

그래서 취미는 단순한 활동이 아니라 ‘속도 조절 장치’라고 할 수 있다.


# 어른에게도 놀이는 필요하다

어른이 되면 놀이라는 단어가 어색해진다.

놀이는 어린아이의 영역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의 뇌는 나이가 들어도 놀이를 필요로 한다. 놀이를 할 때 사람은 창의성을 회복하고, 감정의 긴장을 풀고,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다.

취미는 어른에게 허락된 놀이에 가깝다.

차이는 하나뿐이다.

어른은 그 놀이를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릴 때는 주변에 놀이가 많았다. 친구도 있었고, 시간도 있었고, 놀이터도 있었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 대부분의 환경이 일 중심으로 바뀐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취미를 만들지 않으면 놀이가 삶에서 사라진다.

그때부터 삶은 조금씩 건조해진다.


# 취미는 삶의 균형을 만든다

우리는 종종 삶의 균형을 이야기한다.

일과 삶의 균형, 흔히 말하는 워라밸이다.

하지만 균형은 자동으로 생기지 않는다. 의도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취미는 그 균형을 만드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 중 하나다.

취미가 있는 사람의 하루는 조금 다르게 흘러간다. 퇴근 후의 시간이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기대되는 시간이 된다. 주말은 단순히 쉬는 시간이 아니라 좋아하는 일을 하는 시간이 된다.

이 작은 변화가 삶의 느낌을 바꾼다.

하루가 일로 시작해서 일로 끝나는 삶과, 하루 중 어딘가에 좋아하는 일이 있는 삶은 전혀 다른 경험이 된다.


# 결국 취미는 나를 잃지 않기 위한 장치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역할을 맡는다.

직장인, 부모, 배우자, 친구, 사회 구성원.

이 역할들은 모두 중요하다. 하지만 그 역할들 속에서 ‘나 자신’을 잃어버리기 쉽다. 취미는 그 잃어버린 부분을 다시 찾게 해준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순간, 우리는 잠시라도 삶의 중심으로 돌아온다.

취미는 거창한 것이 필요하지 않다.

잘할 필요도 없고, 특별할 필요도 없다.

단지 좋아하면 된다.

누군가는 책을 읽고, 누군가는 그림을 그리고, 누군가는 운동을 하고, 누군가는 사진을 찍는다. 그 활동이 어떤 것이든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그 시간이 나에게 살아 있다는 감각을 준다는 것이다.

삶은 결국 긴 시간의 반복이다.

그 반복 속에서 우리는 일도 하고, 책임도 지고, 때로는 지치기도 한다.

그래서 더더욱 취미가 필요하다.

취미는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 아니라

삶이 너무 메마르지 않도록 물을 주는 일에 가깝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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