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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뚜기 Nov 11. 2024

ㅅㅈㅌㅇㅂㅈ

지난 수년간

아이폰에서는 지난 시간의 사진을 조합하여 추천 사진을 보여주는 기능이 있다.

이것저것 바쁠 때는 눈여겨보지 않는 기능이다. 


오늘은 홀로 계신 엄마를 돌아보러 잠시 내려왔다. 

밤 9시에 도착했다. 엄마는 여느 때와 같이 스탠드를 켜놓고 휴대전화를 두 손에 꼭 쥐고 자고 있었다. 보청기가 없으면 들리지 않는 80 중반의 치매 할머니는 누가 와서 집안 살림을 다 들고 가도 모르게 자고 있었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딱히 먹을 것이 없다. 세 끼를 모두 주간보호센터에서 해결하니 그럴 만도 하다. 자식들이 보내온 과자는 다 먹었는지 냉장고에서는 찾을 수가 없다.

김치냉장고를 열어보니 과자와 즉석라면, 초코파이 등이 냉동고에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다. 왜 할머니들은 냉동실에 모든 먹을거리를 다 집어넣는 걸까? 냉동실이 영원히 상하지 않는 음식 보관 창고라도 되는 줄 아는 것 같다. 

엄마를 깨우자니 이 밤이 피곤할 것 같아 조용히 아버지가 쓰던 방에 잠자리를 마련했다. 


갑자기 아이폰에 있는 추천 사진이 눈에 띈다. 사진 주제가 “ㅅㅈㅌㅇㅂㅈ”이다. 초성으로 된 이 제목은 아버지의 이름이다. 뒤에 ㅇㅂㅈ은 아버지이다. 엄마와 아버지가 같이 찍은 사진이 연도별로 음악에 맞추어서 나오고 있다. 2022년부터는 환자복을 입고 병원에 있는 사진이 나왔다. 새삼 아버지는 참 잘생기셨다는 생각이 든다. 잘생긴 얼굴이 이제 환자복을 입고 깡마른 채 휠체어를 타고 있다. 얼굴에는 콧줄이 달려있다. 계속 사진을 쳐다보면서 내 눈동자는 그 사진 속 상황으로 들어가는 것 같다. 


3년 전 아버지가 쓰러지고 많은 것이 변화되었다. 애증의 관계인 우리 아버지에 대해 감정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글을 쓰지 않고서는 배길 수가 없었다. 시간이 약인지, 아니면 글을 써서 정리가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아이폰의 추천 사진에 계속 눈이 갔다.

2015년부터 해마다 사진을 보여준다. 이제는 추억이 된 사진들이다. ‘2020년에는 이랬었구나,’ ‘2022년도로 표기된 이 사진은 쓰러지기 한 달 전이었지?’ 아버지의 사진을 보면서 가슴이 먹먹해진다. 


지난주에 아버지 면회를 다녀왔다. 한 달 만에 갔었다. 바쁘기도 했지만, 변함없는 상황에 굳이 자주 가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 솔직한 마음이었다. 

나를 본 아버지의 첫마디는 “혼자 왔나?”였다. 두 달 전에 언니와 같이 갔었는데 그때 엄청 기분이 좋았었나 보다. 이제는 잘 지내냐는 말을 하기도 무안한 상황이다. 요양병원에서 2년 넘게 스스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지내고 있으니 딱히 할 말이 없다. 

‘이제 날씨가 추워졌다. 엄마는 점점 정신이 없어진다. 지난 달에 나는 유리문에 부딪혀 앞니에 금이 갔다.’ 이런 사소한 이야기들을 주저리 늘어놓았다. 병원에서 3번째 가을을 맞이 하는 거라고 굳이 내가 말했다. 아버지는 집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디에 있는지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했다. 휴대폰을 꺼내 집 사진을 보여주어도 모르겠다고 한다. 자식들과 손자들에 대해 안부를 묻는다. 다 잘있다고 돈 번다고 바빠서 못온다고 둘러댔다. 전화번호를 적어놓고 가라고 한다. 매번 갈 때마다 적어준 것이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알겠다고 했다. 더 있으면 차가 막힌다는 핑계를 대고 나왔다. 

다른 각도로 생각해 보면, 이 정도로 적응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일이다. 못살겠다거나 간병인이 마음에 안들다거나 기타등등 여러 이유로 요양병원에서 나가도 싶어 할 수도 있겠지만, 아버지는 그냥 그 상태를 받아들인 것 같다. 나는 가슴 한편이 찌릿하다. 


오늘 아이폰에서 추천해준 “ㅅㅈㅌㅇㅂㅈ”제목의 사진들을 보며 내 모습을 돌아본다. 만약 내가 그런 상태라면, 내 딸이 와서 그러고 가고 나면 침대에 혼자 남아 마음이 어떨까? 


나는 어릴 적 많이 아팠다. 거의 매일 혈관주사를 맞았었다. 혈관이 나오지 않아 병원에 가는 것이 너무 무서웠다. 혼자서 병원에 가던 내가 무서워하니 아버지가 같이 병원에 가주었다. 주사 맞는 것을 지켜보아주기를 바랬지만, 아버지는 바쁜 일이 있다고 병원에만 데려다 주고 가버렸다. 간다는 아버지를 붙잡지도 못하고 글썽이는 눈으로 바라만 보았었다. 나중에 엄마에게 그 이야기를 했을 때 대신 속상함을 표현해 주었다. 


나는 비어있는 아버지 방 침대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가족은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타인이다. 

사촌언니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아버지가 그렇게 밉더니 막상 돌아가시니까 미운 감정은 하나도 생각이 안나더란다. 사랑한다고 많이 말해주라고 했다. 그 말이 그렇게 나오기가 어렵다. 

아버지의 사진을 보면서 다음번에는 초성이라도 말해야겠다고 생각한다. ‘ㅅㄹㅎ’.

생각해 보니 다음 이라는 것도 마냥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올해가 가기 전에 엄마와 아버지를 잠시라도 만나게 해 드려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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