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자니아 선교사의 고민
"몇 천년 전에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지금 무슨 소용이 있어요?"
"그래, 그렇지만 그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셔!!"
그녀는 안식년 때 캐나다에서 현지교민자매와 같이 교회로 걸어가면서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고 했다.
20여 년을 탄자니아에서 선교하면서 살고 있는 선교사와 하룻밤을 보냈다.
무뚝뚝한 성격의 그녀는 웬만해서는 속에 있는 이야기를 잘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묵고 있는 숙소에 손님이 온다고 하룻밤만 재워달라고 해서 그러자고 했다.
그녀는 3일 전에 하와이 코나 열방대학에서 귀국했다. 하와이에서 만난 하나님으로 인해 따끈따끈한 심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열방대학으로 오는 많은 젊은이들을 보았고 잠시 이야기도 했다고 했다.
저녁 식사 시간에는 딱히 할 말이 없어 나는 아버지 이야기를 꺼냈다. 왜냐하면, 그녀의 아버지도 우리 아버지와 같이 뇌경색으로 반신마비가 되었고 골든타임도 지난 상황이 있었다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병원 입원을 굳이 거부하시고 혼자 열심히 재활운동을 했단다. 지금은 멀쩡하게 걸어 다닌다고 했다. 이 시점에서 굳이 우리 아버지와 다른 점을 찾아서 위로를 삼고 싶었다. 그녀의 아버지가 발병한 것은 70대이고, 우리 아버지는 80대였다는 것이다.
그녀의 아버지의 회복을 들으면서 의지가 강하다는 말 말고 더 좋은 표현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더 좋은 표현은 아마도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이 강한 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시 우리 아버지 생각을 하니 한숨이 길게 나왔다.
아침에 일어난 그녀는 나에게 질문을 했다.
글 쓰는 것이 어렵다. 하와이에서부터 나를 후원해 주시는 분께 소식지를 보내고 싶었다. 이 따끈따끈한 경험을 조리 있게 표현하기 위해 시간을 내지만 뱅뱅 돌 뿐 표현이 안된다고 했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던가? 소위 브런치 작가이며 그래도 글로다짓기 정규회원 6개월 차인
내가 '독자의 입장에서 말하듯이 써보라'라고 코치를 해 주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 말고, '독자가 무엇을 궁금할까를 생각해 보라'라고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자연스럽게 그녀의 진짜 고민에 대해 듣게 되었다.
그녀는 탄자니아에서 싱글로 정말 뚝심 하나 가지고 살아내었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여러 사정으로 인해 속했던 선교단체에서도 사직을 하게 되었고, 현지에서도 혼자 비자를 찾아 받아야 했다. 후원을 여러군데 일으켜서 사역을 감당해야 했다. 그녀는 친하게 지내던 현지 선교단체의 한국 스텝들과도 함께 일할 수 없게 되었다. 이렇게 홀로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며 꿋꿋이 구제사역을 감당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그냥 아프리카에서 여러 상황들을 견디고 살다 보니 어려움이 와도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살아갔다. 잘 견뎌내었다. 하지만, 혼자이다 보니 누구에게 이야기할 때가 없더라."
약속한 사역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밥도 먹지 않고 혼자 침대에 널브러져 누워있기가 십상이었다고 했다.
나는 그녀가 '밥도 먹지 않고'라는 말을 들었을 때 놀랐다. 그녀가 얼마나 먹는 걸 좋아하는지 아는데 얼마나 지쳤으면 그 좋아하는 음식을 안 먹는다는 말인가?
그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지나가는 날들이 많아졌고 무기력증이 와 버렸다고 했다. 그런 자신을 보면서 비참하고 살기 싫다는 마음까지 들었다고 했다.
사실 아프리카의 가난은 선교사가 아무리 돕는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구제는 정말 종착지도 없었다. 이 끝도 없는 사역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고 했다. 사람들은 아무리 많이 자금을 일으켜 와서 먹을 것을 주어도 다음에 또 찾아온다. 구구절절 다 어려운 상황인데 도와준다고 상황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었다.
'동정심 피로'
인터넷에서 우연이 이 단어를 발견하게 되어 이것이 정말 무엇을 뜻하는지 찾아보았다고 한다.
그녀는 자신이 겪고 있던 무기력증이 동정심 피로에서 온 것 같았다고 했다.
(동정심 피로는 심리학 용어로 고통받고 있는 이들에 대해 시간이 흐를수록 동정심이 약화되는 현상을 말한다. 공감을 해야 하는 상황에 지속적으로 노출돼 감정은 물론 신체적으로 지친 상태를 말한다. -안태환 리포트 '배제된 이별 중' 네이버검색)
그녀는 자신의 지친 감정과 상태, 아프리카 사람들이 매일 찾아와서 도와달라고 하는 상황, 누군가와 나눌 수 없는 것 등을 들고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했다고 한다. 그녀는 자신이 지쳐서 이제는 더 이상 듣기 싫어하는 끊임없는 도와주세요의 요구를, 하나님은 어떻게 반응하시는지 깨닫게 되었다고 했다.
하나님은 한 번도 언제까지 같은 문제로 나에게 고민을 가져오겠느냐고 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한 번도 거절하지 않으시고 도와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은 다 나에게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고 말씀하셨고(마 11:28), 구하면 듣고 응답하겠다고 하셨다.
그녀는 이 깨달음을 통해, 하나님의 제자로서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따라 살아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나는 그녀에게 다시 물었다. 이제는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하겠는가? 그녀는 조용히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되 예전같이 성질내기보다는 하나님께 같이 기도하자고 할 것이라 했다.
혼자서 그 모진 세월들을 겪어낸 뚝심 선교사에게 나는 이런 말을 전했다.
현지 교민 자매에게 '몸에 문신을 새기지 말라'한 성경말씀을 인용한 것과 몇천 년 전에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지금 무슨 소용이냐고 말하는 청년에게 '그 하나님이 지금도 살아계신다'라고 말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믿음의 표현이다.라고 했다.
그녀의 눈빛은 흔들리고 있었다. 마치 '정말 그것이 믿음인 거야? 나에게 그런 믿음이 있단 말인가?'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4월에 다시 탄자니아로 나아간다.
나는 확신한다. 진리의 말씀은 언제나 어디서나 진리이며, 진리로 인해 사람들은 온전한 자유를 누리게 될 것이다.(요 8: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