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치듯 퇴근하던 나, 오늘은 걸었다

책임의 무게가 나를 가볍게 했다

by 강정환

오늘 퇴근길은 이상하리만치 평안했다.

입사 후 줄곧 퇴근만 하면 업무 생각은 철저히 끊고, 다음 날 출근까지 회사 연락도 보지 않았다.

하루의 노동이 끝났으면, 그 시간만큼은 온전히 나에게 주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게 진짜 쉼이었을까. 오히려 내 안의 조바심은 더 커져만 갔다.

정시에 퇴근해 빨리 집에 도착해야 한다는 압박,

퇴근을 하면 도착역에서 가장 빠르게 내릴 수 있는 플랫폼 위치를 찾느라 주변을 살필 여유조차 없었다.

가슴이 두근거렸고, 어디선가 쫓기듯 퇴근했다.

집에 도착해서도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손발을 씻고, 선크림을 지우고, 렌즈를 빼고, 밥을 먹고, 설거지를 마치고 나서야 겨우 내 시간이 주어졌다.

그렇게 얻은 시간은 겨우 세네 시간 남짓.

시간은 흘러 다시 잠들고, 아침이 되면 또다시 출근 준비를 하는 내 모습을 바라본다.

출근해서는 해야 할 일을 미루고, 책임은 피해버린 채 또 퇴근만을 기다린다.

퇴근하면 마음이 편할 줄 알았는데, 사실 그렇지도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한 클라이언트가 미국에 도착하기 전, 본인이 맡긴 업무가 잘 처리됐는지 몹시 불안해했다.

나는 무의식 중에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책임지자’는 생각을 했다.

평소 같았으면 퇴근 후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을 일인데, 오늘만큼은 달랐다.

결국 변수로 인해 일이 꼬였고, 나는 퇴근 후에도 그 업무를 계속 맡아야 했다.

예전 같았으면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편했다.

아마도 내가 자발적으로 책임지기로 마음먹은 그 순간,

일과 일상의 경계가 스르르 무너졌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그 모순적인 경계 너머에서, 출퇴근에 대한 강박과 불안도 함께 사라지는 걸 느꼈다.

참 오랜만에 느껴보는 평안이었다.

그동안 나는 퇴근하고도 쉬지 못했다.

억지로 익숙한 음악을 틀어놓고, 출근 스트레스에 대한 불안을 안은 채,

무언가 ‘하고 싶은 것’을 하려 애썼지만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하루를 마무리하곤 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내가 하기 싫은 일을 하고, 그 안에서 책임을 다했을 때

오히려 마음이 자유로워졌다.

참 아이러니하다.

나는 오늘 알게 됐다.

일상을 온전히 지키려는 집착이 오히려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걸.

직장에 다닌다고 내 일상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도 없다는 걸.

결국, 일의 책임과 일상의 쉼 사이에서

적당한 조화가 이루어질 때

비로소 진짜 자유가 찾아온다는 걸.

오늘, 나는 그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