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지상주의라는 굴레
최근 저속노화 식단이 유행처럼 번져가고 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이미 오래전부터 미디어는 ‘노화를 늦추는 음식’이라는 이름 아래 아몬드, 블루베리, 병아리콩 같은 식재료들을 ‘슈퍼푸드’로 포장해 소개해왔다.
그 흐름 위에 한 의사 선생님의 책과 방송이 기름을 부었고, ‘저속노화’라는 이름으로 늙지 않으려는 욕망은 더욱 정당화되었다. 보여지는 것에 유독 민감한 나 또한 자연스럽게 그 유행에 동참하게 되었다.
20대의 끝자락에서, 나는 평생 20대처럼 보이고 싶었다. 말도 안 되는 욕심이었다.
나는 야채와 가공식품이 첨가되지않은 고기위주의 고단백, 저탄수화물 식단을 몇 달간 꾸준히 실천해왔다. 식단은 마치 하나의 종교 같았다. 규칙적인 시간에만 먹었고, 쌀밥은 철저히 배제되었다.
생각해보면 이건 나에겐 일종의 ‘식단 반란’이었다.
평생, 먹고 싶은 걸 먹어도 살이 찌지 않았던 사람. 정제 탄수화물, 군것질, 술… 그 모든 것들과 함께 살아온 내가 갑자기 정반대의 식습관으로 삶을 바꿨던 것이다.
운동을 병행하던 작년은 , 말라 있던 몸에 7kg이 붙고, 비로소 정상 체중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살쪘다’고 생각했고, 이전 체질로 돌아갈 수 없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그 두려움은 결국 절식과 저속노화 식단이라는 강박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점점 지쳐갔다. 불안은 더 깊어졌고, 신경은 예민해졌으며, 마음은 말라갔다.
알고 있었음에도 ,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마음의 습관이였으리라
나는 알고있었다 탄수화물이 세로토닌 생성을 돕는다는 사실을. 세로토닌은 행복 신경전달물질이며 그것은 탄수화물을 통해 생성된다 그러니까 즉 어느 정도의 탄수화물 섭취가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알고있었다.
일각에서는 탄수화물을 섭취제한해야하는 절대악의 영양소로만 꾸준히 소개되었기에 나도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생각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몸이 충분한 탄수화물을 공급받지 못하면 장은 세로토닌을 생산할 여유를 잃는다. 결국, 내 식단은 몸만이 아니라 마음까지도 말라가게 만든 것이다.
생각해보면, 이 모든 시작은 그저 ‘늙어 보이지 않기 위해서’였다.
카메라 너머의 연예인들처럼, 나도 매끈하고 젊어 보이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자연을 부정하고, 시간을 부정하며, 스스로를 거부하는 길이었다.
‘저속노화’라는 단어는 이제 나에게 멸칭처럼 들린다.
늙어가는 과정을 ‘병든 것’으로 규정하고, 자기 몸을 자꾸만 고쳐야 할 대상으로 만드는 그 모든 강박의 덩어리처럼. 그 안에서 나는 스스로를 점점 더 조이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숨이 막혀버렸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는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냥, 내가 먹고 싶은 대로.
오늘 밤은 한 끼에 흰쌀밥 세 공기 가까이 먹었다.
탄수화물이라는 존재가 이렇게 나를 따뜻하게 감싸주는 줄 몰랐다. 이 글을 쓰는 지금 , 불안은 잦아들었고 오랜만에 몸도, 마음도 편안한것을 느낀다.
나는 결심했다.
누군가가 말한 ‘정답’이 아니라, 내 몸이 말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보기로.
늙어가는 내 모습을 미워하지 않기로.
그 또한 자연의 시간 속, 아름다운 한 장면일 테니까.
그것이 건강한 삶의 방식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