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2nd Book_당신을 위한 필사책]
최승자 시인의 詩는 '직설적'이다.
에둘러 표현하지 않는다.
이 詩, <일찍이 나는>의 '화자'는 누가 봐도 '곰팡이'다.
그런데 3연을 보면, 행복을 말하고 사랑을 다룬다.
세상 어느 누가 '곰팡이'를 보면서 행복을 논하고, 사랑을 떠올릴까?
하지만 최승자의 언어를 음미하다보면 이게 말이 된다.
시인은 현실에서 소외되었던 모양이다.
그러다 어느 날 방안에서 피어난 곰팡이를 보고, 문득 '자신'을 떠올린다.
천년 천에 죽은 시체와도 다를 바가 없는 처지가 말이다.
그래서 '일찍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말한다.
그런데도 살아가는 사람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살아가기 마련이다.
살다보면 어처구니 없게도 행복할 때도 있고, 사랑으로 뜨거워지기도 한다.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나' 자신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사실이
영원한 루머처럼 느껴졌다는
시인의 자조적인 목소리가 <이 시대의 사랑>이란 그녀의 첫 시집에 오롯이 담겨 있다.
무려 81년作이다.
엄혹했던 군사독재시절, 그 당시 표현으로 '여류시인 최승자'는
엿 같은 세상을 엿 같다고 말할 줄 아는 멋진 여자였나보다.
나도 그 시대를 살았지만, 남자도 아닌, 여자가 그렇게나 '직설적인 말투'로
세상을 살다보면 참 살기 힘들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더 최승자 시인이 존나 멋져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멋져 보이는 것과 잘 사는 것은 하등 상관이 없다.
밥 대신 소주로 연명을 하며 살았더라는 뒷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 안타까웠다.
하긴, 80년대 시인은 '시집'을 팔아서 소주라도 사먹을 수 있었지만,
오늘날의 시인은 '시집'을 팔면 빚쟁이가 된다고 한다.
한 권의 시집에서 그나마 읽을 만한 시는 고작해야 '한편, 두편'...
그런데 그렇게 유명해진 '시'에 비해서 <시집>의 판매고는 두 자리수를 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출판사도 <시집> 출간을 거의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유명시인'이 아니면, 나머지 시인들은 굶어죽는 수밖에 없다.
왜냐면 굳이 <시집>을 사지 않아도 온라인상에 그 시의 '전문'이 다 올라와 있기 때문이다.
무려 '공짜'다.
그러니 <시집>이 팔릴 턱이 있나.
그러니 '시인'이 굶어죽지 않고 살고 있는 것이 용한 셈이다.
그러나 '최승자 시인'은 나은 편이었을 것이다.
온라인이 없던 시절의 시인이었던 덕분에 '소주'라도 마실 원고료가 들어왔을테니 말이다.
한때는 <시집> 사주기 캠페인도 자주 벌이곤 했는데,
이젠 그런 캠페인조차 드물어진 듯 싶다.
그런 탓에 요즘 詩人들은 '투잡'은 기본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