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nd Book_당신을 위한 필사책] 박완서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나는 의외로 '소설'을 많이 읽지 못했다.
비단 소설 뿐만 아니라 '문학장르' 전부를 거의 읽지 않았다.
20대부터는 거의 '비문학'만을 읽었던 것 같다.
나름 이유가 있긴 했다.
배경지식을 쌓기 위해서였다.
어렸을 땐 '과학자'가 꿈이었고, 그래서 '이과'를 선택했고, 결국 '공대'에 진학했다.
그런데 막상 졸업할 때쯤이 되니, 그쪽이 '내 적성'이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전공을 공부하면서 '역학'이 너무 싫었고, 짜증났었다.
열역학, 구조역학, 재료역학...거기에 '공업수학'까지 필수로 들어가니
하루종일 미적분에, 공학용계산기 두드리는게 일이었다.
그래서 대충 졸업했더니...IMF라 취직도 할 수 없었다.
결국 오랜 방황끝에 내가 선택한 직업은 '독서논술쌤'이었다.
그렇게 30대가 되어서 '제2의 삶'이 시작되었다.
그런 탓에 뒤늦게 접하게 된 '문학의 즐거움'은 너무 즐거웠다.
그때 처음 만난 '박완서의 소설들'도 참 정겨웠다.
많이 읽지는 못했다.
당장 아이들과 수업해야할 책들을 읽어내는 것도 힘겨운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한 달 수업을 하기 위해서 꼭 읽어야만 했던 책목록만 15~20권이었고,
학년마다 수업할 '주제'가 달랐기에 '관련 참고자료'를 찾는 것도 꽤나 시간이 많이 걸렸었다.
그래서 30대에는 거의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러다 짬이 나면 '문학소설'을 틈틈이 읽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또 다른 삶'을 만나곤 했더랬다.
다양한 주인공들이 겪어나가는 이야기 속에 빠져드는 맛이 괜찮았기 때문이다.
비록 '허구'를 다뤘지만, '현실에서도 얼마든지 있을 법한 이야기'가 허구였기에
그 모든 이야기가 '사실'처럼 느껴지도록 푹 빠져들었다.
그래야 더 재미있으니까.
하지만 간혹 읽다보면 그렇게 빠져들기 힘든 책들이 있었다.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쓴 글들이 그랬다.
대부분 힘든 시절을 이야기하곤 하는데
난 그게 싫었다.
나도 가난했고 화목하지 못했고 즐거운 기억이 별로 없었으니까
그래서 그들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읽기 싫었다.
기억하기 싫은 '내 모습'이 자꾸 떠오르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가 누군가에겐 '진실'로 다가오는 모양이다.
진실이라고 다 좋은 건 아닌데 말이다.
때론 영영 묻어두고 꺼내지 않거나, 심지어 왜곡하는 것이 더 나은 것도 있기 마련이라는
생각을 했더랬다. 어렸을 땐 말이다.
근데...나이 오십이 넘으니 대면하고 싶지 않은 진실도 마주할 용기가 생기게 되더라.
여전히 날 힘들게 하지만.
결코 부끄러웠던 건 아니었기에...자랑스러울 것도 없지만...
그것도 '나'였던 것은 진실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