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톡 4> 무적핑크 / 와이랩(YLAB) / 문학동네 (2022)
[My Review MMCCXXXVII / 문학동네 34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예순여섯 번째 리뷰는 역사책보다 훨씬 더 재밌는 역사만화를 추구하는 무적핑크의 <삼국지톡 4>다. 솔직히 그동안 오해를 하고 있었는데 '무적핑크(변지민)'는 작가다. <조선왕조실톡>에서도 무적핑크가 직접 글을 쓰고 그림도 그린 줄 알았는데, 사실 <조선왕조실톡>에서는 그림이 별로 없었다. 서울대 디자인과를 졸업하고 웹툰도 많이 올려서 실제로 직접 그린 것이 더 많은 줄 알았는데, 사실은 YLAB이라는 만화컨텐츠 기획제작사와 협업을 했다는 것이 뒤늦게 내 눈에 띄었다. 그래서 <삼국지톡>을 처음 봤을 때에도 무적핑크가 그림실력이 상당히 늘었다고 오해를 했었더랬다. 암튼 그 얘기를 하려던 것이 아니라 벌써 <삼국지톡>을 4권째 독파하고 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삼국지'에 대한 깊이가 남다르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그런 까닭에 <삼국지연의>만 읽고서 의문이 많이 들었던 부분을 상당히 해소할 수도 있었다. 물론 <정사 삼국지>를 병행해서 읽으면 손쉽게 해결될 일이지만, '역사책'이라는 것이 해석을 가하지 않은채 사실만 나열된 것으로 읽을 때 얼마나 지루하고 재미없는지 아시는 분들은 아실 것이다. 이런 재미없는 책을 <삼국지연의>와 비교분석하면서 읽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데, <삼국지톡>을 읽으니 그 두 권을 서로 번갈아가며 읽는 느낌이 물씬 나면서 색다른 재미가 샘솟았던 것이다. 한마디로 '정사'와 '연의(소설)'를 한꺼번에 독파하는 이익을 톡톡히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 책속으로 풍덩 빠져보자.
<삼국지톡 4> 관점 포인트 : 반동탁연합군을 결성하기 전, 여러 군웅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설명하고 있다. 사실 <삼국지톡>의 이런 '느린 전개' 방식이 마냥 달가운 것만은 아니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인물만 수천 명이 넘는데, 그 많은 인물을 이런 식으로 하나하나 세세하게 소개할 참인가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오해를 꾹 참고 읽어나가면 의외의 수확을 얻을 수 있다. 바로 '연의'가 놓치고 있는 디테일을 메우고, 소설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개연성'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사실 <삼국지연의>를 읽다보면 듬성듬성 엉성하게 짜놓은 전개 때문에 이해가 안 되는 장면이 너무나 많다. 가령 손견의 아들 손책과 강동의 천재 주유가 어릴 적부터 '죽마고우'로 지내고 있다고 하는데, 대부분의 <연의>에서는 손견이 죽고, 손책도 죽고, 손책의 동생인 손권이 군주로 등장한 한참 뒤에야 '적벽대전'을 치룰 주인공으로 주유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주유는 등장부터 아주 중대한 임무를 수행하며 권력의 수뇌부로 활약하게 된다. 이렇게 느닷없이 등장하는 인물이 <삼국지연의>에는 수두룩 빽빽인데, <삼국지톡>은 이걸 최대한 '개연성'을 살려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줬다. 정말 대단한 노력이 아닐 수 없다.
4권에서는 조조가 '동탁 암살'에 실패한 뒤 진궁을 만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나고 '여백사 일가족 몰살'한 뒤에 반동탁연합군을 위해 거병하는 이야기가 이어지는 한편, 반동탁연합군에서 초반에 크게 활약한 손견이 원술의 밑에서 구차하게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자세히 펼쳐지며, 공손찬에게 빌붙어서 겨우 연명하던 유비삼형제가 화웅과 대결에서 큰 활약을 벌이며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된 이야기가 펼쳐진다. <삼국지> 팬이라면 모를 수 없는 내용이고 뻔한 내용인데 <삼국지톡>을 읽으면 사뭇 생소한 느낌이 들 것이다. 그런 다름아닌 '이야기의 비중'이 기존의 <삼국지연의>에서 보여주는 비중과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연의'에서는 조연에 불과한 인물이 '정사'에서는 아주 중요한 활약을 했는데, 나관중은 이걸 가뿐하게 무시하고 독자들이 흥미있을 법한 내용으로 바꾸어서 이야기를 전개시켰고, 그리고 다분히 '유비삼형제'를 더 크게 부각시킬 목적으로 쓰여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정사'와 '연의'는 이렇게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가? 그건 '촉한정통론'으로 설명하는 이들이 많다. 나관중이 살던 명나라시대에는 요나라, 금나라, 그리고 원나라라는 '이민족 왕조'가 들어서서 한족이 크게 위축되었다가 명나라가 세워지면서 드디어 한족이 움추렸던 어깨를 힘겹게 펴려던 시대였던 것이다. 그런 한족들에게 힘을 내게 해줄 이야기가 뭐였겠는가? 한고조 유방의 이야기였을 것이다. 그 이야기가 <초한지>다. 하지만 일반 백성들에게 더 사랑받던 이야기는 양산박의 호걸들 이야기 <수호전>이었다. 백성들에게는 이런 '서민적인 이야기'가 더 살가웠던 것이다. 그래서 <삼국지>도 실제로 삼국을 통일한 조조(의 아들 조비때)가 정통을 가지고 있지만, 백성들에게 조조는 그리 인기가 없었던 모양이다. 왜냐면 실리를 위해서 배신도 망설이지 않고, 죄없는 양민도 무수히 학살한 장본인으로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관중은 그런 차가운 조조보다 인의도덕을 내세워 천하대권에 도전한 '유비삼형제'를 당당히 주인공으로 삼았던 것이다. 그래서 <삼국지연의>는 살짝 한고조 유방을 연상시킬 수 있도록 유비에게 온갖 정통성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구성을 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대박을 쳤다.
나가는 글 : 하지만 우리에게 이런 유비는 답답해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 것도 없는 무일푼 주제에 '인의도덕'을 내세우며 언제 출세할 수 있겠느냔 말이다. 더구나 법과 질서가 무너져 혼란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익'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시원찮을 마당에 인의 따지고 도덕 따지면서 언제 빛을 보겠냔 말이다. 그런 점에서 조조는 아주 약삭 빨랐다. 내가 천하를 버릴지언정 천하가 나를 버리게 하지는 않겠다는 말로도 조조는 출세할 수밖에 없는 인물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조조도 초반에 '환관 집안'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득도 보고 손해도 보는 묘한 위치에 섰다가 '동탁 암살'이라는 정의감(?)을 뿜뿜했지만, 그마저도 실패하는 바람에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는 몰락의 길을 걸었다. 그런데 이런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에 조조는 '여백사 일가족 몰살 사건'을 경험하게 된다. 위기 속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하지만 인간으로서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지른 말종이었다.
물론 '여백사 사건'은 정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기록이다. 그런데도 조조는 이런 오명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훗날 천하를 통일하는 과정에서도 무수한 양민학살을 하는 등 매정한 처사가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여백사 사건'은 조조가 벌인 일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조조가 원체 백성들에게 인기가 없던 관계로 그런 '거짓 사건'조차 조조가 벌였다고 알려질 지경이 된 셈이다. 그 덕분에 '유비'가 더욱 빛나 보인다. 나관중은 일찌감치 어지러운 세상에 오직 영웅은 나 조조와 유비 둘 뿐이다라면서 단정을 짓고 두 사람이 천하를 놓고 한 판 대결을 펼칠 것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삼국지연의>는 조조와 유비의 대결로 확정 짓고, 여기서 '촉한정통론'을 내세운다. 즉, 유비에게 정통이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무적핑크는 <삼국지>를 '성공담'이 아닌 '실패담'이라고 운을 땠다. 주인공인 유비가 끝내 천하통일의 위업을 이루지 못하고 스러져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삼국지연의>에서는 이런 아쉬움이 잔뜩 묻어난다. 그리고 관우, 장비, 유비가 차례로 사라지면서 사실상 <삼국지연의>는 종언을 선언한 셈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역사는 주인공이 따로 없다. 주인공이라 여겼던 인물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도 역사는 계속 흐른다. 그래서 우리는 '촉한정통론'이 아니라 '역사의 진면목'을 살피기 위해서 역사책을 읽어야 한다. 하지만 기존의 <삼국지연의>로는 그런 역사의 진면목을 찾아내기 힘들다. 그렇다고 <정사 삼국지>를 읽기에는 너무 재미 없다. 그래서 그 절충안으로 <삼국지톡>이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낼 것으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