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의 대합실은 떠들썩하고 바쁘다. 수많은 여행객 사이에서 나도 여행가방을 메고 서 있다. 하지만 내겐 그저 짐가방만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무거운 '업무'라는 짐도 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회사 메일함에 쌓여 있는 메시지들, 아직 끝내지 못한 보고서, 그리고 쏟아지는 유연한 대처가 필요한 머리 아픈 제안들의 압박들까지.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이번엔 조금 다르게, 여행을 온전히 즐기기 위해 잠시나마 속박에서 벗어나 보기로. 주머니에서 약을 꺼낸다. 이 약은 이 모든 기억과 불안을 잊게 해 준다. 2주일간의 하와이에서만큼은 업무에서 완벽히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약을 입에 넣고 천천히 삼킨다. 복용하는 순간부터 약의 효과는 시작된다고 한다. 업무라는 기억의 짐을 내려놓는 ‘한시적 삭제’가 시작된다.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창밖을 바라본다. 비행기가 이륙하며 구름을 뚫고 올라갈 때, 나의 불안과 초조함도 점점 멀어지는 기분이다. 머릿속에서 회색빛으로 남아있던 업무 관련 기억들이 하나둘 지워지는 것 같다. “휴가 동안은 생각하지 않기로.” 그렇게 되뇌며 길게 숨을 내쉰다.
하와이 공항에 도착하자 낯선 풍경이 펼쳐진다. 푸른 바다와 하늘, 이국적인 공기가 가득하다. 회사 노트북도 이메일 알림도 없다. 업무에 대한 생각도, 조바심도 없다. 모든 것이 멈추고, 나는 그저 나로 존재한다. 오직 나의 생각과 감정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자유가 내 앞에 와 닿는다. 걱정 없는 시간이 너무도 생소하게 느껴진다. 어쩌면 일시적인 망각이란 인간에게 주어진 작은 축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일을 잊은 채로 하와이의 태양 아래에서 그저 나로 살아가는 시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라는 사람의 또 다른 면을 알아가게 된다. 이 2주 동안은 그저 나 자신으로 남아 있었다.
지난 8월 경차 한 대 값 여행비를 주고 망친 하와이 여름 여행을 다녀온 후 앞으로의 다짐에 대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