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책에서 읽은 거 같은데 저자가 가장 싫어하는 계절이 11월이라고 했다. 일 년 중 가장 황량하고 볼 것 없는 계절이라나. 어찌 보면 11월은 낙엽과 닮아서 한때는 내 삶을 가득 채웠던 것들이 이맘때쯤 조용히 떠나가며 추억이 된다. 가을 단풍의 절정이 희미해지는 이 순간, 한 해의 마지막 장을 읽는 기분이 든다. 쌓아온 시간과 관계들을 되새기며, 마음 한구석에서 작별을 준비하는 계절. 11월은 그렇게 조용히 찾아와, 떠나는 것들을 천천히 놓아주도록 지켜본다.
사랑했던 사람, 간직했던 기억, 아끼던 물건들. 그 모든 것이 떠나고 나면 어딘가 텅 빈 기분이 들겠지만, 11월은 그 빈자리를 소중한 깨달음으로 채운다. 떠난 것들은 단지 나를 지나간 것이 아니라, 나를 지탱했던 것들이었음을 깨닫게 한다. 그래서 이 시기엔 사랑하던 사람들과의 추억이 유난히 아름답게 느껴지고, 낡아 보였던 물건들마저 왠지 평소보다 더 빛나 보인다. 그동안 함께 해왔던 것들이 나를 지탱해 주었음을 새삼 느끼며, 마음 한편에 깊은 고마움을 품게 된다. 이제는 그 모든 것들을 놓아 줄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알면서 또 다른 계절을 맞이할 준비를 하게 해준다. 나와 함께 했던 것들이 내게 남긴 흔적들은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음을 알게 되면서 감사가 차오른다.
그리고, 11월은 단지 이별의 계절만은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시작을 위한 준비의 시간이기도 하다. 오래된 것들을 손에서 놓는 건 아쉬움을 동반하지만, 그 자리에는 또 다른 무언가가 다가올 준비를 한다. 떠나보내는 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11월은 ‘성숙’이라는 단어를 대신하는 계절이다. 놓아줌과 감사, 그리고 새로운 계절을 맞이할 준비까지. 낙엽이 되어 흙으로 돌아가 또 다른 생명을 품는 나무처럼, 11월은 새로운 계절을 준비하는 삶의 순환을 느끼게 한다. 그렇게 나는 한 해의 마지막을 담담히 마무리하며, 다가올 계절에 마음을 열 준비를 한다. 그래서 나는 이 계절이 좋다. 11월은 나를 더욱 깊어지게 만드는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