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글보글과 함께
반가운 소식이라고 해야 할까? 3년의 시간이 갔고 이젠 우리들의 일상인 되어버린 마스크. 필수가 아니고 선택이 되었다는 기사에 마음은 덤덤했다. 코로나 사태가 심각해지고, CNN을 통해 매일 브리핑을 들으며, 무슨 이런 질환이 다 있을까 싶었다. 고전을 통해서 페스트부터 에이즈, 메르스 등 많은 전염병들을 알아왔지만 코로나는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것 같았다. 전염병의 위중한 상황들이 지나갈 때마다 중환자실 간호사였던 나는, 이번도 그런 정도 일거라고 생각했다. 중환자실에서 일을 하다 보면 경우에 따라 마스크를 쓰기도 하고, 일회용 방호복을 입고 일을 하기도 한다. 그런 탓인지, 마스크에 대한 거부 감은 없었고 비말 감염인 경우에는 마스크를 쓰는 것이 최선의 예방책 중의 하나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가게에서 일을 하며 마스크를 쓰고 있으면 손님들 중에는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왜 마스크를 쓰고 있냐고 직접 묻는 비호감의 손님들에게 일일이 설명을 할 수도 없었고, 난감하기만 했다. 그러다 마스크가 ‘의무’가 되자 상황은 좀 달라졌다.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마스크 대란으로 또 한 번 곤욕을 치러야 했다. 다행히 미리 확보해 놓았던 마스크가 있어 종업원들에게는 충분히 공급할 수 있었고, 마스크를 쓰지 않고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판매도 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와인을 사러 왔던 손님이 자신은 간호사라고 말하며, 병원의료인들도 마스크가 없어서 전쟁과 다름없는데, 어떻게 여기서는 마스크 판매를 하냐고 따졌다. 할 말이 없었다. 미리 확보해 놓은 것이었지만, 의료인은 이 위중한 상황에서, 자신도 보호하고, 또 보호자들도 보호해야 하는데 말이다.
나는 그녀에게 우리의 생각이 짧았음을 사과하고, 진열대에서 마스크를 치웠다. 종업원들이 사용해야 할 양만 확보하여 사무실에 따로 두었다. 그리고 남아 있던 마스크를 챙겨 가까운 소방서를 찾아갔다. 마스크가 여분이 있어서 가져왔다고 설명을 하며, 소방대원이나 응급구조원들이 사용하면 좋겠다는 말과 주민들을 위해 애쓰신다는 말도 했다. 그리고 그 일을 자신이 간호사라고 이야기했던 손님께 정중하게 이메일로 전했다. 우리들의 생각이 짧았음을 사과하고 다시 우리 가게의 손님으로 돌아와 줄 것을 당부했다. 그녀는 그 이메일에 진심으로 고맙다는 이야기를 전해왔고, 오랫동안 병원에서 일했던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한 것 같아 다행이었다.
그리고 며칠 후 그녀는 다시 우리 가게에 들렀고, 이젠 단골이 되었다. 마스크를 쓰고 있었던 나의 민 낯은 얄팍한 이윤을 내려는 상술이었다. 윤리의 잣대가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상식 안에서 이익을 창출하는 것이 소상공인들이 해야 할 일 아닐까? 그 일을 통해서 거창한 기업 윤리까지는 아니더라도,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해야 할 일들을 잘 알게 되었다.
아직 마스크를 써야 하는 감염취약 시설이나 대중교통 등이 있기는 하지만 이젠 마스크를 벗어도 따가운 시선으로 처다 볼 사람도 없고, 마스크는 어디든 넘치는 일용품이 되고 말았다.
오늘은 엄마 면회를 갔다. 요양 시설에서는 아직도 가정용 코로나 검사를 면회 때마다 해야 하고, 엄마도 나도 마스크를 쓴 채 면회를 해야 한다. 마스크 속에 감추어진 엄마의 표정을 볼 수가 없고, 나의 조잘거림도 마스크 안에 묻혀 희미한 소리로 들릴지도 모른다. 답답하다고 불평을 했으면서도 마스크를 쓰지 않았더라면 곳곳에서 더 많은 희생이 있었을 것이다. 마스크는 충분한 역할을 했고, 이젠 필요할 때만 쓰면 되는 작은 일용품이 되었다.
이제 마스크를 벗으며 사람들의 표정은 각각의 민 낯으로 다가올 것이다. 단골손님이 된 그녀가 내 손을 잡고 웃으며 다가올 수도 있고, 화난 것을 마스크 안에 숨기고 있던 그 누구를 만나면 마스크를 벗은 나의 환한 얼굴을 보여주며 다가갈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엄마의 무표정한 얼굴에 웃음을 짓게 하기 위해 마스크를 벗고 진홍색 립스틱을 바르고 ‘나, 예쁘지?’ 하며 깔깔대고 싶다. 마스크 안에 숨어있던 표정이 봄바람을 타고 살살 걸어 나올지도 모른다. 감추어졌던 팔자 주름도 따듯한 봄바람에 펴지며 웃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