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will, 잘 죽는 것을 생각하다
성당에 다니며 피정을 해 본 신자라면 리빙 윌을 써 봤을 것이다.
나와 남편도 거의 10년 전쯤, 남편은 환갑을 바라보고 나는 50대 중반일 때, 리빙 윌을 쓴 적이 있다. 난 늘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들을 간호하고 돕는 일을 했다. 하지만 죽음을 자주 만났다고 해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줄지는 않는다. 다만 죽음의 의미와 ‘잘 죽는 일’은 생명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깨 달았을 뿐이다.
중환자들은 대부분 예고 없이 찾아온 한순간의 사고나 중병으로 들어온다. 그중에는 물론 예정된 수술을 하고 회복을 위해 잠시 머물다 가는 환자도 있지만 대다수는 그렇지 않다. 따라서 그들을 바라보는 가족, 친구, 지인들은 평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힘겨운 상황에 무척 당혹스러워한다. 더구나 환자의 상태가 나빠져서 마지막 시간을 맞이해야 한다면 그들은 공황 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그때 나는 케이스 매니저로서 그들과 함께했다. 입원환자가 몸과 정신이 건강할 때 써놓은 리빙 윌, 즉 리빙 윌이 있다면 환 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어서 일을 처리하기가 좀 수월하다. 이를테면 인공호흡기를 걸고 일주일 후에도 좋아지지 않는다면 기계를 떼라든지, 현대 의학으로 고칠 수 없는 불치병에 걸렸거나 무의식 상태에 빠졌다면 생명 연장을 하지 말라는 등의 내용이 적혀 있으면 대부분 우리는 환자의 희망에 따라 치료 계획을 잡는다.
문제는 리빙 윌을 써 놓은 사람이 많지 않았다는 데 있다. 퇴직자 모임이나 노인 거주지를 찾아가 계몽 활동을 하지만 리빙 윌 쓰기를 즐기는 사람은 많지 않은 듯하다. 통계를 낸 적은 없지만 경험상 입원 환자 중 20퍼센트 정도가 리빙 윌을 갖고 있었다.
입원환자의 리빙 윌이 있으면 복사본을 가져오게 하지만 의식이 없는 환자인데 리빙 윌이 없다면 메디컬 프록시라는 것을 만들어 둔다. 의식이 없는 환자를 대신해서 누군가가 치료나 수술 등에 대해 결정하게 하는 것이다.
예전에 내가 살았던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이 권리가 환자의 배우자, 자녀 그리고 부모의 순서로 돌아가도록 주법으로 정해 두었지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콜로라도주에서는 환자와 연관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라도 이 권리를 가질 수 있다.
때론 가장 친한 친구, 직장의 동료가 그 권리를 갖기도 한다. 그러나 대개 배우자가 그 1순위로 결정권을 갖는다. 메디컬 프록시는 환자가 의식이 없는 동안만 유효하고 의식이 돌아오면 그 효능을 잃는다. 그런 데 의식이 더디게 돌아오거나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경우 누가 그 결정권을 갖느냐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아들은 어머니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머니를 살게 하고 싶은 반면에 딸은 현실적으로 어머니를 ‘이제 그만 편안하게’ 해 드리고 싶다면 의료진은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내가 나섰다. 나는 환자의 가족들과 친구 그리고 담당 의사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한다. 그리고 환자의 경과와 예후를 이야기하고 다음 단계의 치료법을 제시한 뒤 누가 환자를 대신해 그 결정권을 가질 것인지 정할 것을 종용한다.
모두들 이야기를 나눈 후 만장일치로 한 사람을 결정하면 일은 쉬워지지만 그렇지 않으면 다시 만남을 주선하고 이야기를 계속 끌고 가야 한다. 이 과정이 길어지면 갈등은 골이 깊고 험해진다. 여러 번 미팅을 통해서라도 의견이 수렴되면 좋겠지만 어떤 땐 병원의 법무 팀에게 자문을 구할 때도 있다.
나는 중환자실에서 오래 일을 한 탓인지 이미 오래전에 리빙 윌을 만들어 두었다. 남편도 마찬가지이다. 덕분에 우리 둘은 서로가 마지막 순간을 어떻게 맞고 싶은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면서 마지막을 보낼 권리를 스스로 만들어 놓는 것, 육체와 정신이 건강했을 때 정해 놓아야 목숨을 잡고 끝까지 버티는 모순을 피할 수 있다. 그렇게 버티는 것은 지켜보는 사람에게도 고통이고, 환자에게도 생명으로서의 의미가 전혀 없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백 살이 넘은 환자를 만난 적이 있다. 할머니는 운전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을 손수 해결하면서 독립적으로 사셨다. 집안에서 넘어져 다리 골절상을 당한 할머니는 수술이 끝나고 중환자실에 서 의식이 돌아오자 육두문자를 섞어 쓰며, 다시는 인공호흡기를 걸지 말라고 주문했었다.
나는 할머니에게 리빙 윌이 있는지 물었고, 할머니는 그 자리에서 리빙 윌을 작성했다. 그러면서 진작에 작성하지 못해 수술을 받게 된 것을 후회했다. 그냥 편안하게 하느님 나라로 가시고 싶었던 모양이다. 동시에 다시 병원에 오는 일이 있게 되더라도 응급조치를 취하지 말고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죽게 해 달라는 ‘DNR, 즉 어떤 경우에도 심폐소생술을 실시하지 말 것’도 부탁했다.
나는 차트에다 모든 병원에서 공통으로 쓰이는 보라색 사인을 붙이고 팔찌도 채워 드렸다. 나중에 재활을 위해 요양병원으로 가실 때에는 목걸이를 만들어 걸어 드렸다. 누가 보아도 할머니는 편안하게 가실 준비가 되어 있었다.
구순이 넘은 어머니가 무릎 수술을 하시겠다고 연락이 왔을 때 나는 서둘러 한국을 나갔다. 그리고 수술 전에 리빙 윌이 있어야 한다는 병원 측의 설명을 듣고 어머니의 리빙 윌을 받아 두었다. 한국 방문 때마다 묻고 싶었어도 조심스러워 묻지 못했던 일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럴 것이다. 연세가 높으신 분들께 그 런 것을 여쭤본다는 것은 불효 막심한 일처럼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에 왔으면 가는 것이 사람의 일인데 일이 벌어지고 난 후 우왕좌왕하기보다는 살아생전에 어르신들의 소망을 들어 놓는 편이 더 바람직하다.
화장, 수목장, 매장 등등의 장례절차를 포함해서 중환이 생기면 목숨을 연장하기 위한 치료는 거부한다거나, 그래도 살기를 원한다거나 하는 바람을 적어 두면 남겨진 이들에게는 상당한 도움이 된다. 유산의 분배를 적어 두는 것도 후일 분쟁의 소지를 막을 수 있다. 나도, 내 아들도 혼자이기 때문에 그런 분쟁에 휘말릴 일은 없겠지만 혹시라도 어머니가 재산을 사회 환원하고 싶어 하신다면 기꺼이 받아들여야 할 테니까 말이다. 사회에 환원해야 할 만큼 재산이 많다는 것이 아니라 이를테면 그렇다는 말이다. 또한 어머니의 건강에 문제가 있을 경우, 나의 의지가 아니라 어 머니의 뜻대로 해 드리는 것이 좋으니까 말이다.
지하 작은 금고 속에 넣어 둔 우리들의 리빙 윌, 준비된 마음으로 그날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