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을 걷다 보면 곳곳에서 서핑 장비를 대여하는 곳을 볼 수 있다. 서핑 인구가 정말 많이 늘어난 것 같다. 예전엔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젊은이들의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아가는 것 같다.
오래전 캘리포니아 병원 중환자실에서 만났던 사연이다. 저녁 식사를 하며 지방 뉴스를 보다가 아들이 물었다.
“엄마, 저 서핑 사고 난 아이. 엄마가 일하는 병원에 갔을 수도 있겠네?”
난 얼굴을 들어 TV를 보며 자세한 사고 상황을 들었다. 파도타기를 하던 한 소년이 해초에 걸려 익사 직전에 구조되어 병원으로 실려 갔다는 것이었다.
당시 내 아들은 바닷가 마을에 사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여름엔 해변에서 라이프 가드로 일했고, 학기 중에는 수구 선수로 활동하며 공부보다 더 열심히 하였다. 거기다 파도타기를 배우기 시작하며 서핑 장비를 여기저기 놓아 집안을 어지럽히기가 일쑤였다. 수경과 오리발, 다이빙 슈트, 보온 조끼, 부유 조끼까지 그 커다란 장비들을 온 집 안에 방치해 나의 짜증을 돋우곤 했다.
아들은 시간이 있을 때마다 바다로 나갔고, 난 종종 들려오는 서핑 사고 뉴스에 매번 조심을 시켰다. 사람들이 보이는 곳에서만 서핑해야 한다고, 작은 바위나 돌이 있는 곳엔 가지 말며, 해초들이 엉켜 있는 곳도 안 된다고. 아들은 저녁을 먹자마자 일어나 자기 방으로 들어가며 내 잔소리를 피했다.
다음 날, 새벽 출근을 했는데 아들 말대로 뉴스에서 보았던 그 소년이 환자로 들어와 있었다. 수간호사는 또래의 아들을 둔 나를 배려해, 이 소년 환자를 내가 맡아도 괜찮겠냐고 물었다. 중환자실에서는 간호사의 담당 환자가 자신과 비슷한 상황이거나 지인이면 객관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고, 이로 인해서 심적으로 힘들어하는 경우도 볼 수 있다. 그래서 매일 아침 수간호사는 환자를 맡아야 하는 간호사들의 상황을 살펴 환자를 배정한다. 담당 간호사 역시 어떤 환자를 맡을 때, 불편한 이유가 있으면 반드시 사전에 알려 그날 업무를 수행하는데 차질이 없도록 해야 한다.
“괜찮아. 그 환자 내가 맡을게.”
난 수간호사에게 소년을 맡겠다고 말하고 환자를 살피러 갔다. 보호자들에게 내게도 비슷한 또래의 아들이 있다고 말하며 내 아이를 돌보는 것처럼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캘리포니아 북쪽의 어느 바닷가 마을에 산다는 소년과 엄마는 산타크루즈를 방문 중이었다. 이모는 난소암으로 암 병동에서 치료 중이었지만 말기여서 더 이상의 치료를 할 것이 없다는 연락을 받았고, 마침 소년은 방학이기도 해서 엄마와 같이 이모의 마지막 가는 길에 작별 인사를 하러 온 것이었다. 그러나 혈기왕성한 소년은 종일 암 병동에서 이모만 쳐다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짬을 내서 서핑을 했다. 엄마의 차에는 소년의 서핑 장비들이 늘 실려 있었다.
바닷가 마을에 사는 그 또래들이 그렇듯이 서핑은 거의 매일 하는 운동이므로, 큰 걱정 없이 소년을 해변에 내려 주며 두 시간 후에 오겠다고 했고, 그 시간 엄마는 병원에서 동생을 돌보았다. 약속한 시간에 해변으로 아들을 픽업하러 갔을 땐 사람들이 모여 웅성대고 있었고, 구급차도 두 대나 와 있었다. 가까이 가자, 거기 엔 자신의 아들이 누워 있었다. 응급요원들이 심폐소생술을 시행하고, 의식은 없었다.
옆에서 서핑하던 또 다른 청년의 말에 의하면, 소년은 커다란 파도에 휩쓸렸는데 마침 엉키고 설킨 커다란 해초 더미가 있었고, 그 속으로 소년은 빨려 들어갔다. 헤쳐 나오지 못하고 허우적거리자, 해양 경찰들이 구했다고 했다. 물을 많이 먹은 것 같고 호흡이 거의 정지된 상태라, 심폐소생술을 즉각 했으나 아직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소년은 병원 중환자실로 입원해 인공호흡기를 걸고, 서서히 체온을 올리며 순환기 계통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되고 있었다.
이모는 다른 층 암 병동에, 소년은 중환자실에. 넋이 나간 엄 마와 누나 등 가족들도 우왕좌왕 경황이 없어 보였다. 소년은 인공호흡기에 의지한 뇌사상태에 가까웠다. 가끔 엄마와 누나의 목소리에 심장박동수가 빨라지는 반응과 부분적 근육 경련이 있을 뿐이었다.
“아들한테 엄마 목소리 많이 들려주세요. 의식이 없어도 들을 수는 있어요.”
사람은 의식이 없다 하더라도 최후까지 남아 있는 것이 청각이라고 한다. 나는 그래서 가족들에게 침상 가에 앉아 계속 이야기를 하게 했다. 소년이 혼자 가는 그 길이 무섭고 외롭지 않도록.
지역 뉴스에서는 매시간 소년의 상태를 보도하면서 소년의 상태가 호전되기를 기원했다. 그러나 사람들의 바람과는 달리 소년은 깨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엄마는 소년의 장기기증에 서명했다. 소년의 장기는 아홉 곳으로 옮겨졌다. 소년의 심장과 신장, 각 막과 피부, 뼈와 소장, 대장, 간, 췌장 등을 받은 아홉 명의 생명은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 폐는 사고로 물이 많이 찼고, 그 부종이 빠지지 않아 사용할 수가 없다는 판단이 나와 기증하지 못했다.
커다란 파도를 미끄러지듯 타는 걸 즐겼던 소년은 자신의 몸을 아낌없이 파도에 실려 보냈다. 받는 사람은 어디에 사는 누구 인지 알 수가 없지만, 꼭 필요한 곳에서 필요한 이에게 이식이 어 새로운 생명으로 이어질 것이다. 파도는 끊어질 듯 이어지며 곡예하듯 퍼져 나간다. 소년의 삶은 짧았고 어머니의 가슴에 묻혔다. 하지만 소년은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살렸고 그의 삶은 파 도처럼 이어질 것이다.
소년의 뒤를 따라갈 이모는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겨 갔다. 치료는 이 정도 해봤으면 여한이 없다고 했다 한다. 동생과의 이 별을 준비하러 왔던 엄마는 아들을 가슴에 먼저 묻고 통곡조차 삼키고 있었다.
엄마의 가슴에 묻힌 아들은 하늘나라에서 이모를 다시 만나 면 엄마의 안부를 전해 들을 수 있을까. 엄마를 대신하는 이모의 따스한 품에 안겨 편히 잠들 수 있을까. 남겨진 엄마의 통곡은 촉 촉한 비가 되어 엷어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