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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지은 Nov 22. 2023

다시, 풋볼!

브롱코스를 응원하며


드디어 3승이다! 겨우 이겼지만 이긴 건 이긴 거니까! 한밤 중에 집안이 떠나갈 듯 환호하며 자축한다. 어떻게 생각하면 뭐 그리 별일도 아니다. 누군가는 이기고 누군가는 지는 것이 게임이니까. 가을부터 겨울 내내 매주 월, 목, 일요일에는 경기가 있고, 어느 한 팀은 이기고 또 상대 팀은 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풋볼 시즌만 되면 그 경기들에 온통 정신을 뺏긴다.  오늘은 누가 이길까? 지난번 다쳤던 리시버는 괜찮아졌을까? 이 팀의 쿼터백은 못하고, 저 팀의 디펜스는 참 잘하고 등등의 관심. 특히 나의 브롱코스가 스포츠 뉴스에 뜨면 자세히 살피며 읽는다.


풋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20여 년 전 즈음이다. 대형 주류가게를 운영하면서 순전히 고객 서비스 차원에서 시작한 일이었다. 많은 고객이 경기 시작 직전에 몰리고 경기의 중반인 하프 타임이면 배달 전화가 연이어 걸려온다. 경기가 끝나고 나면 이기면 이겼다고, 지면 졌다고 한잔 하는 문화. 경기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면 고객들 과의 대화가 잘 안 되었다. 미국에 살면서 미국 문화를, 미국 대표 스포츠를 이야기하지 않으면 당연히 소외되는 느낌이 든다. 어쩌면 풋볼에 대한 관심은 나의 생존 전략이었는지 모른다. 이유야 어찌 되었거나 지금의 나는 슈퍼 볼 한번 가보는 것이 버킷 리스트에 들어 있을 정도가 되었다. 단연코 한국의 야구와 축구를 능가하는 미국 사람들의 최선호 스포츠이다.

풋볼이 있는 날이면 매장 안의 대형 TV에서는 종일 풋볼 관련 프로그램을 켜 놓는다. 예상하는 점수, 예상되는 작전, 선수의 부상 상태, 감독의 작전 등등. 지난 게임의 하이라이트를 보며 분석하는 패널들. 이야기가 사뭇 흥미진진하다. 누가 듣거나 말거나 나의 사견도 보태며 가게를 찾는 손님들과 대화를 이어간다. 선수가 적을 옮겼으면 이유를 찾아보기도 하고 어마어마한 이적료를 보며 아~하, 그럴 수밖에 없었겠네, 하기도 하고. 가끔은 ‘한국 할머니가? 풋볼을?’ 하는 시선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서비스 차원의 대화를 이어가는 데는 별 무리가 없다.

풋볼의 정규 시즌은 매 해 9월 초에 시작하여 2월 2번째 주까지 이어지고 팀 당 정규시즌 16경기를 뛴다. 팀은 중간에 한번 휴식을 갖고, 12월까지는 매주 게임을 뛴다. 이어 1월부터   승률이 높았던 팀들로 플레이 오프(playoff:  정규 시즌이 끝난 후 리그의 승자를 가리기 위한 경기)에 돌입하고, 리그의 최강 2팀이 최종 게임을 한다. 그것이 2월의 둘째 주 일요일에 열리는 슈퍼 볼(Super Bowl)이다. 현재는 32개의 팀, 4개의 디비전(Division)으로 나누어져 있다. 그중 브롱코스(Broncos)는 덴버에 본거지를 둔 서부 지역 디비전의 한 팀이다.


우리가 콜로라도로 이주한 것은 20여 년 전. 이미 미국 내에서 가장 오래 산 곳이고, 내 평생에서 유년 시절의 강릉을 제외하면 가장 길게 산 곳이기도 하다. 미국에서의 나의 고향, 콜로라도에 근거지를 둔 브롱코스를 응원하지 않을 수 없다. 브롱코스는 1959년 창단 후 지금까지 3번 슈퍼볼에서 우승을 했다. 1997,1998년 연이어 우승을 차지하며 명성을 떨쳤으나 그 이후 역량은 점차 쇠퇴하며 늘 하위권을 맴돌았다. 근래에는 2015년 50회 슈퍼볼에서 우승을 했다. 그 해 겨울, 2월 한 달은 그야말로 축제였다. 콜로라도 에 사는 주민들은 프라이드를 세우며 즐거워했고 외지에 나가 있는 콜로라도 인들도 고향의 명성을 다시 찾았다며 기뻐했다.  그 해 슈퍼볼이 있던 날, 온 동네에는 팀 칼라인 오렌지색 물결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그때는 퇴직 전이었으므로 병원에 출근을 했는데 직원 90 퍼센트가 브롱코스를 상징하는 옷들과 장식을 하고 있었다. 병원은 일 손을 놓고 TV채널에 시선이 고정돼 있었다. 물론 환자를 돌보면서…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즐겼던 축제. 슈퍼 볼 우승 후 덴버 시청 앞 광장의 인파는 그야말로 덴버가 생긴 이래 최대 인파가 몰렸다. 모두가 들떠서 지냈던 그 해 겨울.


그 이후 기쁨은 점차 소멸되며 해마다 역량이 줄어 가는 브롱코스를 바라보는 팬 심은 씁쓸하다.  우리들 인생이 다 그런 것처럼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다. 내리막에 서 있는 팀. 누군가는 응원을 해 주어야 한다. 그들이 더 의기 소침해지지 않도록.  조금씩 브레이크를 밟으며 언덕을 다시 올라가는 힘을 마련할 수 있도록. 더구나 이 지역에 사는 주민으로 내 마음을 진심으로 보탠다.   ‘마일 하이(Mile High)’ 고도 1마일 위에 있는 도시, 덴버. 그곳에서 공을 던지는 일은 무척 힘들고 까다롭지만 이 높은 고도에 익숙해지면 해수면과 같은 저지대로 내려가면 공을 던지기 쉬워진다 한다. 그런데 왜 브롱코스 팀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일까 의문이 들지만 전문가가 아닌 내가 판단한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런 일은 전문가에게 맡기고 난 게임을 즐기기만 하면 된다.


풋볼은 선수들 간의 몸싸움이 심한 아주 과격하고 빠른 운동이다. 처음 풋볼 경기를 볼 때는 규칙과 스코어 등을 잘 몰랐다. 풋볼 시즌 동안 가게에 오는 손님들과 이야기를 하기엔 상식이 너무 부족했다. 그래서 구글을 찾아보며 선수의 포지션을 배우고, 규칙을 익히고, 유튜브를 보며 공부했다. 그러자 경기가 눈에 들어왔고 그 속도와 방식이 내 성향과 너무 잘 맞는 것 같았다.  


경기를 보는 재미를 더하기 위하여 지난 몇 년간 종업원과 내기를 한다. 나는 무조건 브롱코스가 이기는 것에, 그는 무조건 지는 것에 5불을 건다. 게임이 끝나고 나면 이름 아래에 5불을 각자 붙인다. 한 시즌이 끝나고 나면 그 돈으로 함께 햄버거를 사 먹는 단순한 일이지만 내기를 한다는 것은 게임에 몰두할 수 있게 해 주고, 재미를 배가해 준다. 가끔 브롱코스 게임이 있는 날 내가 가게에서 일을 하게 되면 가게 안이 떠들썩하다. 반은 내편이고 또 반은 그의 편이다. 웃고 떠들고 박수 치며 게임을 보며 일을 한다. 가게에 들어오는 손님들도 가끔은 우리들의 편이 되어 함께 웃고 박수 친다. 게임이 있는 시간은 즐겁게 일을 한다. 하나가 되어 즐기는 사이 게임은 끝나고 누군가는 이기고 또 누군가는 진다. 올해는 대부분 내가 지고 있다. 팀이 거의 꼴찌를 면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난 4게임을 연달아 이겼다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다. 올해도 플레이 오프에 진출하는 것 아니냐는 야무진 꿈을 가져 보는 시간. 결과가 좋지 못해 실망이 된다 하더라 그 시간에 최선을 다했다면 팀에게 박수를 쳐 줄 것이다. 누군가는 응원을 해 주어야 할 팀. 하위를 맴 돌기에 용기와 응원이 필요한 팀. 내 팀이 하위권이면 어떻고, 5불짜리를 여러 번 잃어도 좋다. 이 나이에도 아직 뭔가 즐겁고 흥분되는 일이 있다는 것은 삶의 활기가 되는 즐거운 일이다.

영원한 팬 심을 지키며 내 미국의 고향 콜로라도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내 팀을 오래도록 사랑하리라. 힘껏 박수를 치며, 목소리 높여 ‘오늘도 브롱코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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