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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지은 Oct 10. 2024

새벽 시장

사람 사는 이야기


어두운 새벽, 찬바람을 맞으며 길을 나선다. 눈까풀에 달려 있던 잠마저 달아나는 시원함. 남대천 제방 둑을 달리는 길에서 어릴 적 추억이 창 밖으로 스쳐간다. 방학이면 좁은 제방 둑 길에서 자전거 페달을 신나게 밟으며 바다로 향했던 시간들. 싱그러운 젊음이었고 풋내 나는 사랑이었다. 추억은 빛바랜 수묵화가 되어 지나가고, 창을 여니 새벽을 깨우는 강바람만 시원하게 들어온다.


‘강릉 새벽시장’ 지나다니며 어디인지는 알았지만 그곳을 가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장이 서는 시간은 오전 4-9시. 너무 이른 시간이었고 혼자 가는 것이 좀 그래서. 같이 동행하겠느냐고 물어보고 싶은 절친은 꿀 잠을 잘 시간. 나이가 들며 잠 패턴이 달라진 나는 충분히 활동을 할 시간이었지만. 혼자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언제 한 번은 꼭 가 보리라 생각은 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제 아침, 드디어 실행했다.


미국에서 아들이 왔다. 서울에 도착했고 다음날 강릉에 온다. 엄마가 강릉에 나와 있는 동안 한국의 가을을 만나기 위해 온다는 아들. 특별한 것을 먹이고 싶었고 요즈음 제철인 송이버섯을 찾아 큰마음을 먹었다.

아직 어두운 남대천변 고수부지. 온통 가로등불을 환하게 밝히고 난장이 섰다. 커다란 비치파라솔을 펼치고 정해진 구획 안에 각자 가지고 나온 물건들을 펼쳐 놓았다. 말 그대로 없는 거 빼고 다 있는 시골장터. 크지는 않았지만 살 거리는 충분했다. 흑임자 두부, 잣 두부, 연 두부, 콩나물에 도토리묵까지. 장 바구니가 가득했다. 가까운 곳에 주차를 할 수 있어서, 짐을 한번 부려 두고 다음 장바구니를 들고 더 꼼꼼히 장을 누빈다. 각종 과일, 그 비싸다는 금 배추, 각종 야채. 반 건조 어물. 김치 등을 파는 반찬 가게. 약재들. 햅쌀과 햇 콩들.


천천히 살피며 걷는 난장에서 만난 사람 사는 냄새. 한쪽에는 모여서 이른 아침을 먹고, 또 다른 쪽에선 달콤한 냄새 가득한 모닝커피를 마신다. 건강을 생각하는 아저씨는 요구르트를 사서 완 샷. 멀리 뻥튀기 트럭의 고소한 냄새가 난장에 가득하고 ‘펑펑’ 소리에 맞추어 내 발걸음도 가볍다.

드디어 송이 파는 곳을 몇 군데 찾았다. 아들을 먹일 것이니 그리 최상품이 아니어도 괜찮았다. 송이는 좀 핀 것이 향이 더 진하다. 몇 군데에서 가격을 비교해 보고 성산에서 왔다는 아주머니 앞에서 흥정을 시작했다. 500그램에 15만 원. 나쁘지 않은 가격이었고 아무리 떼를 써도 가격을 깎아 주거나 덤 하나는 없었다. 그래도 정겨운 강릉 사투리의 아주머니가 엊그제 대관령 산자락에서 캤다는 송이가 믿음이 갔다. 송이는 향도 짙었고 모양도 꽤 괜찮았다. 대금을 지불하며 언제까지 송이가 나느냐고 물었더니, 이제 시작이라 한 달은 더 나올 것 같다는 답이다.

소중이 송이를 받아 들고 다시 차로 돌아오며 새벽장을 뒤돌아본다. 사람들이 많아졌다 제법 북적 거리는 시골 새벽 장. 부지런한 상인들과 사랑하는 이에게 좋은 것을 싸게 먹이고 싶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 삶이 숨 쉬는 현장. 웅성거림이 정겨운 곳. 왜 이곳을 아직 한 번도 안 왔었을까 싶었다. 다음엔 아들과 함께 올 것이고, 그다음엔 꿀 잠을 자고 있을 절친을 깨워서. 그리고 또 혼자서.


남대천 둔치 새벽시장에서 만나는 사람사는 이야기. 말 그대로 참 정겹다. 그동안 알았던 이곳을 왜 이제야 왔을까 싶었다. 그러나 한편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할머니가 된 나이지만 외동 딸로 엄마의 사랑을 듬뿍 받았 듯, 내 고향 강릉에서 아들하고 단 둘일 때, 내가 받은 사랑을 엄마처럼 아들에게 줄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들에게 차려줄 저녁 상을 상상하며 혼자 웃는다. 작은 것들이 가슴에 안기며 마음이 따뜻해 진다. 소소한 행복을 안고 돌아 오는 길, 먼 하늘 여명이 곱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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