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나

감정의 메마름과 사라진 가능성들에 대하여

by 이지훈

어른이 된다는 건, 죽어간 나들의 무게를 내가 감당하게 되는 일이다.


어릴 때는 감정이 풍성했다. 작은 일에도 웃음이 터지고, 슬픔은 너무 커서 감당이 안 됐다. 세상이 크고 찬란하게 느껴졌고, 나는 그 안에서 수없이 반짝였다. 나는 나 하나가 아니라, 수많은 ‘나’들의 합창이었다.


그때 나는 동시에 여러 가능성이었다. 예술가일 수도 있었고, 과학자일 수도 있었고, 가출러일 수도 있었다. 어떤 세계에서는 내가 뮤지션이었고, 어떤 세계에서는 너무 일찍 죽었다. 하지만 모두 살아 있었다. 모두 동시에 떨리고 있었다.


그러다 하나씩 조용해졌다. 선택이 생기고, 방향이 좁아지고, 어떤 길은 가지 않기로 했다. 그 순간마다 하나의 ‘나’가 사라졌다. 패러렐월드의 가지들이 꺾이고, 가능성은 닫혔다. 죽었다고 느끼지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분명히 어떤 ‘나’는 그때 끝났었다.


살아남은 나는 점점 혼자가 되어갔다. 공명은 줄어들고, 감정은 메말랐다.
사랑에도, 이별에도, 꿈에도 전처럼 흔들리지 않는다.

사람들은 말한다. “어른이 되면 원래 그래.”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그건 단순한 성장이나 무뎌짐이 아니다.
그건 내가 함께였던 나들이 사라진 결과다. 나는 지금도 무언가를 결정할 때마다 느낀다.

어딘가에서 또 하나의 내가 조용히 사라졌다고.


슬픔은 없지만, 텅 빈 감각이 남는다. 어쩌면 외로움이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사람이 부족한 게 아니라, 사라진 나들이 더 이상 공명하지 않기 때문에 느끼는 결핍.

그렇게 생각하면, 이 무감각조차도 하나의 애도다. 나로 살지 못한 나들을 위한 조용한 장례.

지금 이 감정을 우리는 이름 붙이지 못한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다 알고 있다.

살아 있다는 건, 결국 무한한 경우의 수 속에서 살아남았다는 뜻이라는 걸.

그리고 남은 나는, 사라진 나들을 대신해 살아가야 한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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