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동 길에서 미술을 보다.

9정거장의 여정, 다시 걷다

by Euri Sim

항암의 밤, 세브란스에서 적십자까지


첫 번째 항암 뒤, 간으로 전이되었던 암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기쁜 소식을 들은 것도 잠시였다.
두 번째 항암을 마치고 돌아온 아버지는 딸꾹질이 멈추지 않았다.
숨이 넘어가는 것처럼 이어지는 딸꾹질은 밤새 아버지를 괴롭혔고, 잠 한 번 편히 잘 수 없게 만들었다.

그 멈추지 않는 딸꾹질을 하는 아버지를 뒷좌석에 태우고, 신경은 온통 그쪽에 가 있으면서도 마치 아무렇지 않은 듯 어머니와 나는 수다를 떨며 꽉 막힌 경부고속도로를 달렸다.
가뿐가뿐 차 안 가득 울리던 딸꾹질 소리를 못 들은 척, 이왕이면 분위기를 가볍게 떠받치듯, 평소처럼 아무 일도 아닌 듯.

세브란스 응급실에 도착해 이것저것 검사를 마치고 한참이 지나서야 들은 말은 뜻밖에 담담했다.
“수치는 크게 이상하지 않습니다. 여기 입원은 어렵고, 근처 병원이나 댁 근처 입원이 가능한 병원을 연계해 드릴게요.”

며칠 뒤 예정된 세브란스 외래 진료에 맞춰, 근처 병원에서 기다리겠다는 말과 함께 우리가 향한 곳이 서대문 적십자병원 응급실이었다.
지금도 적십자병원에서 아버지의 주치의를 맡아 주셨던 조과장님께, 어떤 말로 감사를 전해야 할지 감히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그때의 감사와 안도, 그리고 설명하기 힘든 불안이 뒤섞인 채, 나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9정거장의 여정, 다시 걷다


집에서 고등학교가 있던 낙성대까지, 삼성–선릉–역삼–강남–교대–서초–방배–사당–낙성대, 아홉 정거장의 길.ㅡ지하철 안에서는 볼 수 없었던 빌딩 틈새의 조각들과 벽면에 스며든 색채가 이제는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나이 든 부모님의 야윈 손과는 반대로 더 화려해질 준비를 하고 있는 거리들은, 오히려 더 넓고 깊게 느껴진다. 삼성역 7번 출구로 향하는 익숙한 블록에는 이제 신라 스테이가 들어서 반짝이는 입구를 장식하고 있다.

발걸음이 느려지며 눈에 들어온 두 작품 — 김인태의 〈생장의 행간〉(2019)과 이용백의 〈디지털 명상〉(2019) — 이 도시의 숨결을 조용히 속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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